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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원본엔 유가 공격 없다 |
김수중교수의 철학산책
근래 중국에서 새로운 발굴들이 활기를 띄고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이 <노자>이다. <노자>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애독돼 왔으나, 저자나 성립 연대 등이 애매해 역사적으로 항상 논란거리였다.
1973년에 호남성 마왕퇴에서 발굴된 두 본의 노자 텍스트는 비단에 쓰여 있어 <백서노자>라 불린다(대략 서기 200년 경 성립). 또 1993년 호북성 곽점에서 발굴된 노자 텍스트는 대나무 판에 쓰여 있기 때문에 <죽간노자>라 칭한다(서기전 300년 전후 성립). 이 두가지 발굴은 2천년 이상 논란이 제기된 <노자> 해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여기서는 그 요점만 몇가지 정리해 보자.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현행본 <노자>는 81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발굴된 판본들에는 분장이 없다. 현행본에는 전반부에 도(道)에 대한 언급이 많고 후반부에 덕(德)에 대한 설명이 많기 때문에 흔히 <도덕경>이라 불리지만, <백서노자>에는 오히려 반대로 되어 있어 덕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부에 먼저 나온다. 또 백서본에는 어조사가 많이 등장해 노자 택스트에서 끊어 읽는 문제, 곧 구두점 문제를 크게 해결해 주었다.
둘째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된 원본으로 추정되는 <죽간노자>에는 유가를 공격하는 구절이 별로 없다. 가령 현행본에서 ‘인의를 버려야 한다(絶仁棄義)’는 구절은 죽간본에 ‘거짓을 버려야 한다(絶僞棄詐)’로 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하면 유가와 도가의 치열한 공격은 전국 시대 이후에 나온 것이다. 또 죽간본에는 우주론이나 존재론과 같은 형이상학적 내용이 거의 없다.
셋째 <노자>라는 책은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고 발전돼 온 것이다. 고대로부터 전국시대까지 ‘노자학파’ 사람들의 사상이 응집된 것이라 하겠다. ‘겸허유약(謙虛柔弱)’과 ‘무위자연’을 근본 모티브로 하던 초기 사상이 백서본 이후 정치 술수적 요소와 우주생성론을 포함하는 잡박한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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