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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6 18:47 수정 : 2005.03.06 18:47

주중식의 학교이야기

삼월 첫날, 긴 겨울 방학을 마치고 아이들은 손태극기를 하나씩 들고 학교에 나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새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새 학년에서는 어느 교실로 가야 할 지를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실로 가지 않고 모두 강당에 모였다.

전교생이 모인 강당 안은 금방 아이들 이야기 소리로 떠들썩하다. 삼일절 기념식을 올려야 할 시간이 되어 사회를 맡은 선생님이 몇 번이나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해도 이야기 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아직 우리 선생님이 없고, 우리 반 아이가 누군지를 모르니까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모두 멀뚱한 상태다.

서른 여섯 명 아이만 모여 있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도 분위기가 흩어지면 땀이 나는데, 전교생이 모여 있는 데서 이런 분위기라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다 힘든 일이 되고 만다. 더구나 오늘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줄 삼일절 기념 이야기는 만해 한용운 선생한테서 본받아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준비하면 반드시 길동무의 평을 들어 본다. 그때마다 손뼉을 받기도 하고, 이건 이래서 좀 걸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 삼일절 기념 이야기를 들어 보더니 대학생한테나 맞는 이야기라고 평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나는 다른 이야기를 찾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만 한다면, 아이들한테 못할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한참 가만히 서 있었다. 붕 떠 있던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이제 막 2학년이 된 아이부터 6학년이 된 아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먼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쓴 시를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일까 하고 귀담아 잘 들어 보세요. 듣고 나서 어떤 말이 마음에 남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님의 침묵’을 읽어 주었다. 한용운 선생의 일대기를 대강 소개하고, 다시 시 맛보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읽어 준 시에서 자주 나온 말이 있는데 그게 무언지 물어보았다. ‘님’이라고 쉽게 대답한다. 이 ‘님’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면서,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며 살아가도록 지켜 주는 우리나라를 나타내기도 하며,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이 안 보이는 데서 바른 길로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을 나타낸다는 설명을 붙였다. 이어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나라가 갔다, 나라를 빼앗겼다는 말이라고 낮은 학년 아이들이 대답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이들이니까 이 시가 무얼 말하는지 제대로 알아듣는다는 것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힘차게 만세를 세 번 부르고 마쳤다. 한용운 선생이 ‘님’을 사랑하고 아끼며, 그리워하고 그 말에 복종하며 살아가겠다던 그 정신이 우리 가운데 감도는 것 같았다.


삼일절은 노는 날이 아니다. 삼일독립운동의 뜻을 살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날이다. 우리 학교에서 공휴일인 삼일절과 광복절을 수업일수에 넣어 행사를 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 gildongm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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