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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7 16:17 수정 : 2006.09.18 13:40

1318책세상 /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한낮에는 더운 열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려도 밤이 되면 서늘하고 푸른 바람결에 드문드문 들리는 여치울음이 반갑다. 장마와 더위에 지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이 무렵 아득한 세월 속에 접혔던 기억들이 세월을 뚫고 올라온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로 가는 길은 다소 멀었지만, 저수지는 고요했고 둑은 사철 자연이 엮어내는 풍경들로 아름다웠다. 고독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절, 어린 소녀가 걷기에는 약간 먼 그 길을 나는 늘 시를 외우며 다녔다. 여름날 푸른 벼가 자라는 들판의 사잇길을 걸을 때, 초록 호수에 비치던 산그림자를 보며 접한 시들은 내내 오래된 나의 정서로 그대로 자리 잡았다. 올 가을 시로 정신적인 여백을 채우며 소중한 사람들의 향기에 젖을 수 있는 좋은 시집 한 권을 추천하고 싶다. 도종환님이 엮은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나무생각 펴냄)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아버지 은빛눈물 어머니 가슴떨림
시·그림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게…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시, 2부는 자녀가 부모님께 드리는 시, 3부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시들을 모아 엮었다. 시들을 한 편씩 읽어가노라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들려주는 시에서는 삶의 가치를 배우고, 평생을 고생하신 부모님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삶의 참다운 의미를 깨우치게 된다. 시 한편마다 곁들인 그림들은 시의 여백 사이로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도종환님의 시 감상도 온전한 독자의 감상을 위해 앞서가지 않고 자신의 감정으로 끌고 가지도 않는다.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어 서로가 교감하고 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물질이 풍요롭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이 뻗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자식의 손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내기 위해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주시며 사랑스러운 아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쇳조각을 빼내셨다. 아들은 그 속에서 인생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그 사랑은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세로 나타난다.

“만일 당신이 과거의 그날 오후로 들어갔다면/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어떤 한 남자가/ 한 소년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은빛 눈물을, 자그마한 불길을 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중략) 보라, 아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아내의 엄지손가락을 쓰다듬어 내리는 지를…” 리영리의 ‘선물’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 된 큰딸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하다가 말이 술술 풀리지 않을랴치면 제 방문을 닫으면서 ‘엄마는 나를 잘 몰라’ 한다. 순간 나는 예전 엄마에게 쏟았던 말들을 기억해내며 에누리 없는 인생의 숙연함을 느낀다. 거리고 도종환님의 시의 한 구절을 되뇌인다. “내가 밟은 벼룻길 자갈돌이/ 어머니 가슴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수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내가 드린 것은 어머니를 벌판 끝에 세워놓고/ 억새같이 떨게 만든 세월뿐이었습니다.”


시로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라는 책에서 김상욱님이 주장했던 것처럼 시를 분해하지 않고 사과처럼 통째로 맛을 봐야한다. 사과를 껍질째 와삭 깨물어 그 맛을 온몸으로 느끼듯이 좋은 시를 찾아 음미하고 애송하며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보는 것은 정신적인 성숙과 여유를 위한 필수 자양분이다. 우리의 삶이 비록 남루하고 가난할지라도 커나가는 자식들 뒤에서 간절한 기도의 말을 삼키는 마음으로 시와 함께 삶을 이해해 보자. 이현숙/영등포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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