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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6 19:17 수정 : 2005.03.06 19:17

정월 대보름날 호두를 미리 사 두었다가 3월 첫날 학급 아이들에게 두 알씩 나누어 준 적이 있다. “호두를 손 안에 넣고 굴려 보자. 소리가 참 정겹다. 이게 지압 효과도 있어 속도 편해지고 눈도 밝아지며 집중력도 높아진다. 호두를 너희들에게 줄 테니 집에서 공부할 때, 혹은 쉴 참에 꾸준히 비벼 보거라. 그렇게 일 년쯤 지나면 껍질이 다 닳아서 맨질맨질해 질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그런 친구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사람이다. 1년 뒤, 내년 종업식 때 호두 검사를 하겠다. 물론 성공한 친구에게는 큰 상을 주마.”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년 뒤 종업식 날 호두를 가져온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호두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 “맞아, 호두!”하면서 무릎을 치거나,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3월 첫날이면 똑같이 학급 아이들에게 호두를 나누어 주고 1년 뒤를 약속했다. 결과는 늘 같았다. 한 달까지는 꽤 많은 아이들이 품에 지니고 다녔으나, 두세 달이 지나면서 대부분 잃어버리거나 다른 관심사에 치여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매번 마지막 종례 내용이 같았다. “작은 것 하나라도 끝까지 지키는 뚝심이 자신을 키운다. 이게 호두의 교훈이다.” 뭐 대단한 이치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지속성’의 교훈을 새겨 주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 흐름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개를 두루 섭렵하는 것이 잘하는 처세인 듯이 추켜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로 삶을 지키는 힘이 이러한 속도와 다양함일까?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하나를 하더라도 끝까지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많다. 사실, 그래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 ‘제대로 배웠다’ 함은 결론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절차와 이치를 배우며, 일을 완성시키는 고난과 열정을 배우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제대로 배운 것은 하나를 배웠어도 열, 또는 그 이상을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교실마다 까막딱다구리 같은 눈빛이 가득하고, 새 출발에 대한 다짐으로 긴장감마저 감돈다. 누구나 공책 첫 장은 글씨 획부터 범상치 않다. 그 마음과 다짐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관건은 지속성이다. 이들의 지속성이 상승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교사와 부모들의 몫이다.

올해도 호두를 챙겨 두었다. 담임을 맡지 않았으니 도서부 아이들에게라도 숙제를 낼 참이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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