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9 11:27
수정 : 2006.09.19 11:27
수업료를 미납해도 출석정지 못한다는 교육부 지침이 나왔습니다. 수업료 지불의무를 지고있는 학부모 대신 학생을 징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래 전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 갈 때였지요.
그 때 나는 1학년 등록금도 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빚만 잔뜩 지고 잠적해 버린 아버지 때문에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된 때였으니까요. 공립은 등록금 미납자도 봐준다고 하던데 우리 학교는 사립고였습니다. 등록금이 곧 학교수입인지라 재단 측에서는 등록금 수금에 혈안이 되었지요.
등록금 미납자 다그쳐 빨리 돈을 걷어내라는 교장선생님의 잔소리에 선생님들만 죽을 맛이었지만 없어서 못내는 아이들 패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서로 못할 짓이었을 겝니다. 1년 열두달 교무실 게시판 미납자 명단에 붙박이로 붙어 있었던 내 이름. 어쩌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이도 갈라치면 뒤통수가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비참했던 기억, 지금도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1학년 등록금 못낸 죄로 학급배정에서 빠져 버렸습니다. 죄인처럼 교무실로 불려가 닥달을 받은 뒤 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간신히 반 배정이 됐습니다. 2학년 몇 반이었을까? 몇 반인진 몰라도 담임 선생님 성함과 얼굴은 또렷이 기억납니다.
‘유완호 선생님’. 큰 키에 왕방울처럼 튀어나온 눈동자. 보기에도 무서운 수학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무서운 선생님 따라 잔뜩 기 죽은 모습으로 쭈볏쭈볏 교실문을 들어섰던 순간, 120여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장면에선 그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만큼 처참한 심정이었습니다.
책상과 의자가 붙어있는 1인용 책상에선 이미 키순대로 번호가 매겨진 아이들이 나란히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보자면 5번 안에 들었어야 마땅할 꼬마가 36번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중간에 끼면 정비된 대열이 일순간에 흐트러질 판이기 때문에 창가 맨 갓줄, 나 혼자만 톡 튀어나온 자리에 앉으라는 지시까지 받고보니 공부도 뭐고 더 이상 살고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남 앞에선 내 의사표시 마저 똑똑이 못 할 만큼 수줍은데다가 주변머리까지 없는 내가 그 수모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좋은 성적 때문이었습니다. 급한 대로 성적순으로 뽑는 임시 임원 중에 부반장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임시 부반장이 만고에 뭔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반 친구들에게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 그 알량한 밑천 하나로 내 슬픈 여고시절, 남들은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넘어간다는 빛나는 학창시절을 힘들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공부는 곧잘 하고 말도 잘 듣는 모범생인 나를 담임 선생님은 정말 많이 예뻐하셨습니다.
보충수업비도 대신 내주신 덕에 나는 끝까지 수업을 들을 수 있었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경주 불국사로 가는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나를 데려가기 위해 한시간 가까이 어르고 달래며 진을 뺐습니다. 보충수업비 도움 받는 것도 염치가 없는데 수학여행비까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제자 마음을 당신인들 모르겠습니까.
“이 놈아, 나중에 네가 돈 벌면 선생님 맛난 것 사주면 되지 않냐.”
고개 푹 수그리고 쓰다달다 말없이 버티는 나를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시던 우리 선생님. 내 인생에서 선생님은 언제나 따스한 봄볕, 추위를 이기게 하는 봄볕 바로 그것입니다.
‘수업료 미납해도 출석정지 못한다’
참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세상이 감사합니다. 이제는 가난한 아이들도 배움의 전당에서 소외되지 않는 세상. 느리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목마른 사람에겐 성에 차지 않는 세상이지만 이 정도 변한 것만도 어딥니까. 점점 나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내 후배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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