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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4 19:16 수정 : 2006.09.24 19:16

안도현 시인의 문학청년 시절 고르고 고른 시의 고갱이들
따뜻한 사진이 여운을 더하네

1318책세상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안도현 엮음, 이가서 펴냄)

양 갈래로 쫑쫑 땋아 내린 풍성한 머리채로 볼우물을 깊이 파며 잇몸까지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는 소녀의 이마에 햇살이 환하다. 한 손으로는 신발은 단단히 쥐고 자신을 옆으로 돌려 허리에 진 누나의 등에 매달린 동생인 듯한 맨발의 아이와 소녀의 뒤로 골목길 얼룩진 시멘트 담에 기대어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에도 부러운 듯 미소가 피어 난 정겨운 사진 한 장. 김종삼 시인의 시 <장편(掌篇) 2>를 넘기면 나오는 사진이다.

문학 공부를 하면서 눈에 띄는 좋은 시가 있으면 노트에 필사하기를 즐겨한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베낀 시 노트가 혼자만 소장한 훌륭한 시집이었고 시공부의 지침서였으며 문학청년의 고독을 달래주던 애인이었다고 말한다. ‘골목안 풍경’을 테마로 개인전을 여섯 번 열고 같은 제목의 사진집을 출간했던 고 김기찬 작가의 골목길 사진과 어우러진 이 시선집은, 작가가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눈높이를 한 단계 상승시켜 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며 작지만 강력한 시의 힘을 신뢰하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묶었다”고 한다.

‘살구꽃은 살구나무 아래에서 흙장난을 하며 놀던/ 아이들의 얼굴 위로 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풋살구를 털 때까지/ 얼굴 가득 버짐 같은 살구꽃을 달고 잠이 드는 것이었다’문신 시인의 ‘살구꽃’과 함께 실린 사진은 소꿉놀이를 하는 단발머리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철거를 앞둔 듯 허물어진 가난한 집과는 아랑곳없이 하얀 재가 된 연탄과 빈 깡통을 놓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젊은 시인들한테서 만나기 어려운 전통적인 서정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보여주는 문신 시인의 시에서 만나는 ‘촌스러움, 구닥다리, 케케묵음, 한가로움, 퇴행’이 오히려 ‘신선하게’ 뵌다는 안도현 시인의 감상에서, 하필 오래 전 달동네를 찍은 흑백의 골목길 사진과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시’를 버무려 나란히 엮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린다.

아이들과 시를 공부할 때, 도서실에 가서 여러 시인의 시를 읽어본 뒤 가장 마음에 남는 시를 한 편 골라 외우게 한다. 자신이 이해한 대로 만든 시화를 칠판에 붙여 놓고 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깔고 친구들 앞에서 갖은 표정으로 시를 낭송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 시가 저 마음에 닿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를 외우기 위해 여러 번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운율도 저절로 알게 되고 심상이니 비유니 상징이니 어렵게만 느껴지던 말들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니 시를 고르고 시를 낭송하는 일은 시를 공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예로부터 시를 짓는 것보다 시를 아는 것이 어렵고 시를 아는 것보다 시를 뽑는 일이 더 어렵다고 일러 왔다. 각 사진마다 시의 여운을 더하는 문장들이 삽입된 이 시선집을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시를 고르는 안목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김정숙/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회원, 안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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