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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경기도의 한 청소년수련원에서 초등학생들이 암벽등반 체험활동 전에 강사로부터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이 수련원은 한국청소년수련시설협회가 실시한 안전등급평가에서 ‘모범시설’ 뽑힌 30곳 가운데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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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팀 몫 절반정도 다시 학교로
“뒷돈 커질수록 수련활동은 부실” 학생들이 수련활동 장소로 이용하는 전국 숙박형 청소년수련시설 5곳 가운데 1곳은 시설 안전점검에서 낙제점을 받은 곳이다. 각 학교가 수련시설의 안전이나 프로그램의 질을 따지기 보다는, 리베이트를 건네는 수련시설의 홍보·영업 방식에 휘둘려 수련시설을 정하는 탓이다. 8년째 청소년수련원에서 학생들의 수련활동 교육을 맡고 있는 ㅇ(34·청소년지도사)씨는 “수련활동 계약을 맺을 때 수련환경이나 활동 프로그램을 따져보고 결정하는 학교는 손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ㅇ씨가 일하는 청소년수련원은 소속 홍보팀과 이른바 ‘보따리 장사’로 불리는 외부의 프리랜서 영업팀을 통해 학교를 유치한다. 청소년수련원이나 유스호스텔 등 수련시설 쪽은 영업팀의 유치실적에 따라 대가를 건넨다. 1박2일 일정 수련단은 학생 1명에 5000~6000원, 2박3일 일정은 8000~11000원. 학생들이 내는 수련활동비의 30% 이상이 영업팀 몫이다. 영업팀은 이 가운데 절반 정도를 학교 쪽에 건네는 게 불문율처럼 굳어있다. ㅇ씨는 “영업팀은 전체 인솔교사들에게 주는 돈 이외에도 교장에게 40만원, 학년부장 20만원, 교감에게 30만원씩 건네고, 사립학교에는 행정실장 몫으로 30만원을 따로 챙긴다”며 “1년 동안 수련원을 이용하는 100여개 학교 가운데 리베이트를 거부하는 학교는 5군데 정도”라고 털어놨다. 영업팀을 거치지 않고 수련원과 학교가 직접 계약을 할 때도 학생 1명에 4000원 정도를 학교에 건넨다고 전했다. 명목은 ‘장학금’이나 ‘학교발전기금’이지만, 대부분 교사들 회식비 등으로 쓰인다.
이 수련원 뿐만 아니라 일부 국·공립 시설을 제외한 전국의 청소년수련시설 대다수가 비슷한 영업방식으로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학교를 상대로 청소년수련단을 전문적으로 모집하는 이들만 300~400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드는데다 주5일 수업으로 수련활동이 의무사항이 아니라 학교장 재량에 맡겨져 수련시설들의 유치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광주의 한 청소년수련원에 근무하는 ㅂ씨는 “정부가 청소년 수련활동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권장한 1990년대 중반부터 전국에 청소년수련원과 유스호스텔 등 수련시설들이 우후숙준처럼 생겨 유치 경쟁이 과열됐다”며 “뒷돈에 교사들 선물까지 홍보비로 돈이 들어갈수록 학생들 수련활동은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들 수련시설들은 안전이나 수련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뒷전이다. 지난 4월 한국청소년수련시설협회가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실시한 자체 안전등급평가 결과를 보면, 점검 대상 시설 227곳 가운데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한 ‘취약’과 ‘보안’ 등급을 받은 곳이 각각 48곳과 35곳에 이른다. 일부 수련시설은 지난 1999년 ‘씨랜드 참사’ 때 많은 희생자를 낸 ‘창고형 샌드위치판넬 건물’을 여전히 숙소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 수련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청소년지도사의 법정 인원도 채우지 않고 자격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학생들의 수련활동 지도를 맡기는 것도 예사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사전 답사를 통해 적어도 수련시설 3곳의 프로그램과 안전시설을 비교해 본 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을 하도록 상세한 지침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대형 콘도에서 운영하는 수련시설 등은 아예 서울사무소를 차려놓고 서울과 경기권 학교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영업팀을 거치지 않고 수련시설과 직접 계약을 하는 학교는 드물다. 경기도에 있는 한 청소년수련원 책임자는 “한국청소년수련시설협회에서 학교와 수련시설이 투명한 계약을 맺도록 표준계약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수련활동을 시키려면 학교장과 교사들이 리베이트에 휘둘리지 말고 수련 프로그램을 따져보고 시설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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