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8 18:07
수정 : 2006.10.08 18:07
펜을 프린들로 부른다면?아이들과 선생님 티격태격
언어의 사회성 깨닫게 됐죠
1318책세상
프린들 주세요
하늘 높고 바람 시원한 10월이다. 10월에는 개천절도 있고, 추석도 있고, 한 때는 공휴일이었던 한글날도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등록유산이자, 창제 시기, 방법, 창제자 등이 정확하게 알려진 유일한 문자이기도 한 한글이 반포된 날을 기념한 날이 바로 한글날이다.
이렇게 우수한 문자가 있어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는 우리말의 여러 규칙들, 즉 문법을 배운다. 품사와 문장 성분과 형태소와 음운 규칙들을 익히고, 표준어와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배운다. 그런데 이러한 규칙들은 학생들에게 고리타분하고 외워야하는 골치 덩어리로 보이기 쉽다. 왜 ‘짜장면’이라 하면 안 되고 ‘자장면’이라 해야 할까? 왜 꼬리를 흔들며 왈왈 짓는 동물을 ‘게’라 하면 안 되고 ‘개’라 해야 할까?
<프린들 주세요>(사계절 펴냄)의 주인공 닉도 이런 고민에 빠진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고, 그것을 실천해내는 힘도 강한 5학년짜리 닉은 그것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서 비롯됐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이를 검증할 계획을 세운다. 바로 ‘펜’이라는 말 대신 ‘프린들’이라는 말을 여러 사람이 쓰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제 닉과 친구들은 문방구점에서도, 학교에서도 ‘펜’이라는 말 대신 ‘프린들’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의 한 때 장난으로 그치고 말 수 도 있는 이 놀이는, 사전을 숭배하고 언어의 규칙성을 수호하는 국어선생님이 이를 금지하고 나서자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의, ‘펜’과 ‘프린들’을 둘러싼 ‘낱말 전쟁’으로 확대된다. 이 낱말 전쟁은 신문과 방송에까지 소개되고, 닉과 ‘프린들’은 유명해진다. 과연 이 낱말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되었을까? 이 전쟁의 최후 승자는 10년이 지나서야 밝혀진다. 그리고 실제로는 이것이 전쟁이 아니라 국어 선생님이 악역을 자처하고 행했던 교육의 한 방법이었음도 밝혀진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벌이는 낱말 전쟁이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엉뚱한 닉을 말썽꾸러기로 낙인찍지 않고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보살핌 때문에 감동적이기도 한 이 이야기는, 초등학교 3, 4학년이라면 충분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중학생 이상이라면 수업 시간에 함께 읽고 언어의 사회적, 역사적 특성을 이해하는 예로 활용할 수도 있다.
언어는 새로 생겨 널리 쓰이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생명체다. 언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가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욕설을 함부로 내뱉고, 외래어를 마구잡이로 쓰고, 규칙이 파괴된 인터넷 용어들을 마구 쓰다 보면, 언젠가 우리의 언어는 그 모습이 미워질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살아갈 시대는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겨나 새 이름을 지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또한 남북한이 통일되면 서로 다른 남북의 언어를 하나로 만드는 통일어 제정 작업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쓰는 말이 우리 언어의 모습을 좌우할 수 있다는 책임감 아래 우리말을 바르게 쓰고, 닉처럼 예쁜 말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우리 청소년들도 해 보기 바란다.
박정해/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회원, 서울 성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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