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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8 18:14 수정 : 2006.10.08 18:14

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책꽂이

1956년 9월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화가 이중섭. 그의 50주기에 때맞춰 나온 평전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 ‘소의 화가’ 등의 수식어구를 달고 다니는 우리나라 대표 화가 이중섭의 삶을 아이들 수준에 맞춰 풀어냈다.

단지 이중섭의 그림 몇 점만을 본 이라면 이 책은 상당히 낯설게 다가온다. 부농의 둘째 아들, 일본 유학, 일본인 아내와 결혼, 고단한 피란생활, 알코올 중독, 정신병 증세 등 평탄치 않은 삶의 편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겨우 얻어탄 피란선에서 군인들에게 얻은 차가운 주먹밥을 아들에게 건네는 아비의 처량한 심정, 부산 난민촌 시절 어떻게든 먹을거리를 구해보려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아내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옛영화 필름처럼 애잔하다. 첫째 아들을 잃고 실성한듯 웃다가 미친 듯이 천도복숭아를 그린 뒤(<두 어린이와 복숭아>), “우리 아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따먹으라고 그린 거지, 헤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생의 격심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낯섬들을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그의 깊고 뛰어난 예술세계는 좀 더 명확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형 이중석을 잃고, 전쟁이 나던 해 월남한다. 피난지 생활은 누구에가나 그렇듯 춥고 배고프기 그지 없었다. 결국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떠나게 되고, 이후 그는 부산, 대구, 통영, 진주, 서울 등을 떠돈다. 이런 신산한 삶의 한 중간에서 그는 무섭고 집요하게 창작에 매달렸다. 헤어진 가족에 대한 견디기 힘든 그리움, 끝없는 절망과 체념, 병으로 무너져 내리는 육체 등 모든 간난 속에서도 그의 예술은 강해지고 심오해졌다. <달과 까마귀> <횐 소> <길 떠나는 가족> <비둘기를 안고 있는 가족> 등의 걸작들은 그 결과물들이었다.

힘차고 대담한 터치와 역동적이고 단순한 형태, 선명한 원색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감, 사물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시간이 흘러도 내내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뒤에 숨은 그의 고통과 치열한 예술혼 때문이리라.

책에는 이중섭이 소에 미친 이유도 잘 나와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소를 유난히 좋아해 항상 들에 나가 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걸 즐겼다. “소에게선 순수한 조선의 냄새가 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일본 유학 시절, 부산과 서귀포 피난 시절에도 그는 늘 소를 생각하며 소를 그렸다. 말하자면 그에게 소는 나라의 혼이자 자신의 예술세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셈이다.


<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엄광용 지음. 산하/9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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