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8 19:34
수정 : 2006.10.08 21:19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관우가 죽자 유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장 오(吳)로 쳐들어가자며 군대를 모았다. 냉철한 전략가 제갈량은 그를 말렸다. 동생 죽인 원수는 다음에 갚아도 된다. 지금은 조조가 죽어 혼란에 싸인 위(魏)를 쳐야 할 때다. 그러니 일단 오나라와 화해를 해라. 그러나 분노에 싸인 유비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유비는 원하는 데로 했고, 예상대로 패했다.
아랍의 영웅 살라딘 대왕은 관대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십자군의 횡포를 뼈저리게 겪었음에도, 그는 보복을 몰랐다. 항복한 적들에게는 퇴로를 열어주었고, 심지어 여비까지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그는 아랍의 분노를 잘 알았다. 하지만 격렬한 감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리는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도를 넘어선 ‘응징’은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다. 통 큰 용서와 인내는 당장은 괴롭더라도, 상대에게 이성을 찾고 화해를 생각할 공간을 열어준다. 현명한 사람은 분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기를 든다. 그는 평화가 최고의 목표임을 알고 있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勝戰國)들은 살라딘의 지혜를 몰랐다. 가해자 독일에게 굴욕을 주고 엄청난 보상을 요구했다. 모욕당한 독일 사람들은 칼을 품었고, 이는 다시 두 번째 세계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에 대한 처방은 달랐다. 이번에 독일에 주어진 것은 경제 원조와 재건 지원이었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독일과 유럽 국가들 사이의 친근한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있는대로 감정을 터뜨리면 화가 풀릴까? 그렇지 않다. 현명한 사람은 화를 제대로 낼 줄 안다. 폭발한 분노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그 때문에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갈 터다. 그럴수록 수치심과 무력감, 심지어 공포심까지 더해져 해결책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제 ‘나’의 문제를 돌아보자. 걷잡을 수 없게 화가 치밀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내 안의 짐승’부터 다스려야 한다.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면, 가슴 속 야수가 이빨을 드러낸다. ‘마음에도 없는’ 거친 말이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내고, 그 후유증으로 나는 아프고도 긴 시간을 보내야 할 터다.
대화 전문가들은 분노로 ‘뚜껑 열릴 때’, 다섯을 세라고 충고한다. 앞서의 제갈량의 충고를 떠올리자. 하필이면 감정이 꼭짓점에 오른 이 순간에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 응징을 지금 당장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면, 어느덧 ‘논리 브레이크’가 마음 속 짐승의 고삐를 다시 움켜쥐고 있다. 꽉 붙잡고 상대의 ‘공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둑의 고수(高手)는 몇 수 앞을 내다본다. 인격이 다듬어진 사람도 그렇다. 화를 터뜨릴 때 일어날 일과 그 다음 상황, 딱 두 수 만 예상해 보자. 예를 들어, 귀찮게 장난 거는 선배에게 “그만 하라고! 내가 뭐 샌드백인줄 알아?” 라며 성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은 속이 후련할 터다. 그 다음은? 성숙할수록 사람은 일어날 상황에 앞뒤를 더 넓게 내다본다. 길게 보면 버럭 화를 내는 일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참기만 해서는 마음 속 응어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명한 외교관은 대책을 내놓기 전에 이해득실을 꼼꼼하게 따진다. 영토 문제 등으로 주변나라와 불편한 사이가 되어도, 어지간해서는 막말을 내뱉는 법이 없다. 밀접하게 얽혀있는 이웃과 험한 사이가 되어서는 서로에게 손해가 되는 탓이다. “유감이다”라는 완곡한 외교 어법, 그 다음은 “주목하겠다”는 경고, 그래도 나아지는 바 없으면 순시선 파견 등등, 해결에 필요한 꼭 그만큼의 수단과 무력을 수위를 조절해 가며 해결점을 찾는다.
이제 외교의 방법을 내가 처한 갈등에 응용해 보자. 먼저 나의 상처를 말로 표현해보고, 그래도 소용없으면 경고를 한다. 나아지는 바 없으면 어른들에게 조정을 요청한다 등등. 이런 식으로 ‘단계별 대책’을 정리해 놓으면, 참기 어려운 순간마다 ‘논리 브레이크’가 제 몫을 해내기 시작한다.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준비된 또 다른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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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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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J. Bentham)의 ‘쾌락 계산법’도 도움이 된다. 벤담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를 때는, 상황별로 가능한 대안을 죽 펼쳐보라고 권한다. 그런 후에, 다음 잣대들을 놓고 우열을 가려보면 가장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지 이내 가릴 수 있단다. 내 결정이 얼마나 큰 쾌감을 가져다주는가?, 과연 확실하게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쉽게 할 만한 일인가?, 얼마나 오래 나를 즐겁게 해줄까?, 다른 쾌감과 연결되는가?, 혹시 또 다른 고통을 낳지는 않는가? 각각의 질문에 0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매겨서 합산해 보라. 내 행동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최고의 처신은 감정이 아니라 논리에서 나온다. 욱한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의 결과를 계산하고 반성하라. 성숙하고 편안한 인품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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