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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8 19:37 수정 : 2006.10.13 15:11

학교 현장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체벌금지를 법제화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녕 사랑으로 소통하는 교사와 학생이라면
물리성 존재 이유 없어

시사로 잡는 논술

“난 진정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하지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너희들이다. 말로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너희들은…. 너희들을 사랑하는 나의 마지막 선택이다. 모두 밖으로 나가 엎드려 뻗쳐!”

지난 2004년 대법원은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선에서 제한된 체벌을 허용한다’라는 판례를 내렸다. 허용할 수 없는 체벌로는 ①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리지 않거나 교사의 감정 성격에서 비롯된 체벌. 개별적으로 학생을 불러 지도할 수 있는데도 공개적으로 체벌한 경우. ② 신체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물건이나 교사의 신체를 이용해 때리는 행위. ③ 성별·연령·개인사정에 따라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주는 경우 등을 제시하였다.

‘사랑의 매’는 받아들이는 학생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 물론 교육적 효과를 고려한 교사의 매가 있지만, 교사도 사람이기에 감정을 배제한 사랑의 매는 있을 수가 없다. 과거 우리 선인들은 학동에게 사랑의 매를 때릴 때, 맞을 학동에게 회초리를 구해오라고 했다. 그 시간 동안에 훈장과 학동은 서로의 입장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매는 상징적 의미로 때리고 야단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것이 사랑이 매다. 교사와 학생 모두는 감정과 자기 의식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물리성이 들어간 곳에 사랑의 매는 없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늘 사랑의 매라는 미명아래 체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체벌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체벌을 아예 할 수 없도록 ‘체벌금지 법제화’하자는 의견이 있다. 또한 학생의 잘못에 대해 벌점을 부과하는 상벌점제와 학생대표와 교사가 토론해 규정을 정하자는 자율 규제 안도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부 기록→학부모 소환 →징계 등의 절차에 따라 처벌하자는 ‘합리적 시스템화’의 안도 있다.

서양 철학 전통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구분이 강하다. 체벌에 있어서 때리는 주체는 교사고 맞는 학생은 객체이다.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기에 때리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학생의 반응은 다르다. 체벌하는 교사가 뺨을 때리고 야구 방망이, 아이스하키 스틱, 당구대, 마대 자루로 엉덩이를 때린다 해도 학생이 달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사랑의 매다. 하지만 언어적 폭력이나 작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다 할지라도 학생이 과잉체벌과 폭력으로 받아들이면 과잉체벌이고 폭력이 된다.

문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느낌에 따라서 교사의 매는 사랑의 매가 될 수도 있고, 폭력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 교사와 학생이 받아들이는 느낌의 차이로 사랑의 매냐 아니냐는 결정 난다. 이런 의미로 사랑의 매는 전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의사소통을 통해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다. 이기적 본성을 억누를 줄 아는 지혜를 그들은 가정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이미 배웠다. 어릴 때의 이기적 욕망의 절제는 매를 맞으면서도 체득한 것이 그들 학생이다. 학생들은 맞으면서 클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들은 언어의 상호교류로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배우는 생명체다.

문제의 해결점은 나와 너, 교사와 학생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연결할 수 있는 소통이다.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생 간의 구분을 사랑을 매개로 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학교 현장에서의 체벌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그 소통이 이루어질 때, 존재하지 않는 사랑의 매는 가상의 상태로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수석/인천 동산고 교사,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찾아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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