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8 21:00
수정 : 2006.10.08 21:00
아낌없이 주는 나무
큰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채 하교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급하게 집으로 달려온 녀석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급하면 학교 화장실에 들렀다 오지 그랬느냐는 엄마의 말에 녀석은 학교 화장실은 더럽고 무서워서 갈 수가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십 년도 전의 일이지만, 사정은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아들은 지금도 학교의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학교 화장실은 여전히 더럽고 냄새가 지독하다. 교직원 화장실까지 가기가 귀찮아 수업 끝나고 나오다 학생 화장실에 들르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청소도 안 돼 있고, 물도 제대로 내리지 않아 온통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께서 교직원 화장실 앞에서 아이들에게 사정조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들은 자꾸 교직원 화장실로 볼일을 보러 오고, 아주머니는 그런 아이들 때문에 청소할 일이 더 많아지니, 아이들에게 제발 학생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왜 학생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고 선생님 화장실을 사용하느냐고 물으니, 몇 가지 이유를 댄다. 우선 학생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다는 거다. 학생 화장실에 휴지를 걸어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휴지가 감당이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이유는 좌변기가 아니라는 거다. 집의 화장실은 다 좌변기이니, 앉아서 볼 일 보는 습관이 든 아이들이 쪼그려야 하는 학생 화장실의 불편을 감수하기가 힘든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교사 화장실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학교 환경이 아이들의 요구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예전에는 학교가 집보다 좋은 시설이었다면, 이제 학교는 집보다 더 열악한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화장실 문제도 생기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열악한 학교 시설이 어디 화장실뿐이겠는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장소조차 없는 학교, 소파 하나 놓을 공간도 없는 실내, 마음대로 물건을 골라 살 수 없는 매점…. 열 손가락을 꼽아도 다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은 학생 복지의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 없이 방치된 곳이 학교다. 학생들의 복지 문제는 지금 학교에서는 아예 관심 밖이다. 학생 복지보다는 성적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 학생 복지가 잘 된 학교의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되고, 정서적 안정감은 학생 성적과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라도 나와야 학교 환경이 바뀌게 될까?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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