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0 19:45
수정 : 2006.10.10 19:45
전국 141곳중 절반 이상이 서약서 받아
장애아 위한 특수학교가…
부산지역 한 특수학교 초등부 3학년생인 이아무개(10)군의 어머니는 아이를 입학시키던 날 ‘사고가 나도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던 서러운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자폐증을 앓는 아이를 데리고 스케이트장을 놀러 가도 사고책임을 부모가 지겠다는 각서를 써야 들여보내줬기에 새삼스런 일은 아니었지만 “특수학교에서마저 책임 회피를 하려고 이러는구나” 하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하지만 그는 그 서약서에 군말없이 서명했다.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학교를 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탓이다. 이처럼 장애인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면서 이런 서약서 제출을 강요받는 일은 이군의 어머니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10일 장애인교육권연대와 국회 교육위 안민석 의원(열린우리당)이 전국 143개 특수학교 중 141곳의 학칙을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특수학교의 절반이 넘는 73개 학교(51.8%)가 ‘입학 때 학생의 보호자가 학교에서 정한 별도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을 학칙에 명기해 강요하고 있다. 학부모 서약서에 보증인까지 요구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들 서약서는 ‘재학중 일어나는 문제의 책임을 학교쪽에 묻지 않겠다’거나 ‘제적처분을 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심신상의 질환으로 인해 학교 안팎에서 나는 사고에 대해 그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질 것을 서약한다’ 등등 모든 사고·안전 관련 책임을 학부모(보호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전·전남·경남·제주지역은 모든 학교가, 대구·광주·전북·충남은 80%가 넘는 학교가 서약서를 요구하고 있다. 학칙에 넣지 않고도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서약서 요구 학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학칙을 분석한 정재우 특수교사(전교조 특수교육위 정책국장)는 “장애로 인해 특별한 교육을 받으려고 특수학교에 입학하는 것인데도, 장애를 이유로 서약서 제출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의 인권과 학부모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일반 학교 비장애인 학생 부모들이 서약서를 내지 않는 데 비추어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법을 어기고 학생정원을 학칙으로 제한하거나 입학 허용 여부를 교장이 결정하는 학교도 각각 71곳(50%), 50곳(36%)이나 됐다. 결원이 있을 때만 전·편입학을 허가하는 학교도 43곳이나 됐다. 이는 학생 정원과 입학 및 전·편입학은 교육감이나 교육장이 특수교육운영위를 거쳐 결정·배치하도록 돼 있는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을 위반한 것이다. 때문에 학교에서 입학할 학생을 결정한 뒤 특수교육운영위가 이를 배치하는 등 절차가 뒤바뀌는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특수학교에 가려고 면접을 봐야 하는가 하면 입학을 원하는 학생이 많을 경우 중증 장애 학생들이 배제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상 의무교육대상자인 초·중학생은 퇴학처분을 할 수 없도록 돼 있음에도 초등·중학생들에게 퇴학처분을 할 수 있도록 명시한 학교도 15곳(11%)이나 됐다.
반면, 학칙에 꼭 담아야 하는 학생자치활동 장려 관련 조항이 있는 학교는 54곳에 그쳤다. 학생별 특성에 맞는 교육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개별화교육운영위 구성 관련 조항이 있는 학교도 97곳에 그쳤다.
안민석 의원은 “사회의 편견과 냉대로 인한 장애학생의 상처를 씻어주는 곳이 돼야 할 특수학교의 학칙이 오히려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요소를 없애도록 교육당국이 지도감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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