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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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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유 논술
수능 시험이 코앞이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둘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그린다. 조용히 들여다보니 편지쓰기 삼매경이다. 문자 메시지가 사귐을 대표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직접 ‘제작한’ 편지가 대세다. “언니들한테 줄 거예요. 찹쌀떡도 같이요.” 쳐다볼 시간도 없는지 입만 대답한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면서’ 인생을 산다.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과 관심을 주고 학생들은 편지와 마음을 준다.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고, 아기들은 부모의 목을 휘감고 안기며 기쁨을 준다. 생일 때는 친구나 가족끼리 선물을 주고, 혼인하는 두 집안은 사랑하는 사람과 예물을 준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졸업식, 입학식 등 특별한 행사도 빠질 수 없다. 우리들의 인생 속에는 다른 사람과 주고 받은 선물들이 켜켜이 숨어있다.
사람들은 왜 선물을 주는 걸까. 우리들은 집들이갈 때 세제와 화장지를 선물한다. 세제는 거품이 올라차듯 돈을 벌어들이라는 뜻이고, 화장지는 일이 술술 잘 풀리라는 의미이다. 수험생에게 문제 잘 찍으라고 송곳을 준다거나, 찰싹 달라붙으라고 엿을 주는 것과 같다. 선물은 매개물이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감정을 전달해 준다. 선물은 그것이 무엇이건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받은 물품 그 자체뿐 아니라 내 손에 오기 까지 들어간 정성과 시간을 느끼는 덕분이다.
더 깊이 들어가보자. 사실 우리가 사적인 행위로만 여기는 선물 안에는 매우 복합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선물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은 미디어이다. 젊은 연인들은 결혼을 약속할 때 반지를 주고 받는다. 보석으로 만든 아가의 돌반지는 부와 건강을 기원하고, 부모님께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은 감사의 상징이다. 게다가 선물은 사회가 구축한 문화와 가치관을 학습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딸에게 인형을 선물한다거나 아들에게 기관총 장난감을 선물하는 것은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을 훈련시키는 방편이다.
또한, ‘선물 교환’은 인류의 문명체계를 풀어갈 핵심 열쇠다. ‘증여론’을 쓴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원시 부족들의 교역을 관찰하면서 ‘선물 교환’의 성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교환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의외로 간단하고 엄중하다. 주면 받아야 하고 받으면 되돌려주어야 한다. 받지 않으면 상대의 의사를 거부하는 것이고, 되돌려주지 않으면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미이다. 옛 부족들은 선물속에 깃든 영혼이 그 사물을 교환할 때 양쪽 당사자들간의 영적인 유대를 강하게 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모스는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인간과 집단에는 ‘선물을 주어야 할 의무’, ‘주는 선물을 받아야 할 의무’, 그리고 받은 선물에 대하여는 ‘되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분석했다.
호혜성의 의무로 압축되는 선물 교류는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시킨다. 전쟁을 치르게 될 부족이 지원병력을 요구할 때 군대를 보내면 양자 사이의 동맹은 더욱 강화된다. 결혼식에서 부조를 받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경조사가 생길 때 답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른 사람의 초대에 응하지 않거나 참석한 연회의 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통을 거부한다는 의사 표현이 된다. 내내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사람이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선물 교환의 단절은 부드러운 관계들을 후퇴시킨다. 호혜성의 의무를 저버린 탓이다.
호혜적인 교환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분업과 문물 교역도 선물 교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부족에게 선물을 줄 때는 자신이 많이 가진 것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주고받은 선물의 시작이 교역을 위한 분업으로 정착되고 그 결과 특산물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원리는 물품만이 아니라 농촌의 ‘품앗이’처럼 노동력을 교환하는 형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주고 받음 자체가 호의적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선물교환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기반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은 모두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행위이다. 많이 주고 덜 받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서나 ‘너그럽다’고 평가된다. 사람들은 덕을 베풀면 그 행위로 인해 ‘어떤 것’을 얻는다. 종교 제도는 각자의 행위를 존경심과 교환하게 하여 사회의 골간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서양인들의 경우, 주로 종교기념일에 선물교환을 집중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그러나 선물의 의미는 때때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선물의 상징화 기능은 메시지가 정확히 해석되지 않을 위험을 안고 있다. 예쁜 머리핀을 선물했더니, ‘머리 좀 매만져라’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왜 없겠는가.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불편해지는 교육계의 모습도 그렇다. ‘감사의 표시’와 ‘촌지’의 경계가 저마다 자의적인 탓이다. 또한 관대한 척하면서 선물을 시혜하는 사람들의 권력형 기부와 봉사는 받는 사람의 기분을 망친다. 호혜성은 자발적이고 평등할 때 가능한 것이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주고 싶은가’보다 ‘받을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기준으로 선물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것은 설령 받은 것이 마음에 안들어도 간직해둔다는 압도적 답변과 호응하는 대목이다. ‘주고 받음’이 없었다면 형성되지 않았을 문명의 축을 오늘도 우리 학생들이 이어가고 있다. 이럴 장면을 마주할 때는 모스가 말한 ‘선물에 깃든 영혼’을 무조건 믿고 싶을 뿐이다.
<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여고생들은 선생님께 편지나 선물을 많이 하지만, 남고생들은 그렇지 않다. 성인 여성들의 선물 교환은 주로 사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성인 남성들은 업무용 선물에서 앞선다. 왜 그럴까? 생각과 이유를 말해 보자.
2. 직급이 높을수록 선물을 긍정적으로, 낮을수록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사회적 조건과 처지를 고려하여 그 이유를 추론해 보자.
3. 친목을 다지는 선물과 불신이나 반감을 일으키는 선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유도 함께 말해보자.
4. ‘받아도 될 선물’과 ‘받아서는 안될 뇌물’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조건을 생각해보자.
5. 어떤 것을 줄 수 있는 능력과 받을 수 있는 능력은 같은 것인가 아닌가? 입장과 이유를 말해 보자.
6. 오늘날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돈으로 환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성(性)이나 학력 등은 돈과 교환해선 안될 것으로 여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주장의 근거를 탐색할 때는?
“사례나 반례를 들어주세요”나 “그 근거는 충분한가요?”를 사용해 보세요. 근거는 구체적이고 충분할 때 논리성이 강화됩니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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