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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5 22:57 수정 : 2006.10.15 23:46

개여귀꽃을 따 왕관을 만들어 쓴 단이.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가을이 무르익어 가도록 매미들이 울어대네. “지이지이지이~” 가을에 무슨 매미 울음 소리냐고? 늦털매미가 꼭 자기 이름처럼 정말 늦게까지 “지이지이지이~” 울어. 매미들 가운데 늦털매미는 가을에 우는 매미야. 혼자서 가을의 주인이라도 된 양 “지이지이지이~” 아주 부지런히 울어대.

늦털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을꽃 나들이에 나섰어. 가을꽃하면 가장 먼저 국화과 꽃을 떠올릴 수 있지. 연보랏빛 쑥부쟁이, 하얀 미국쑥부쟁이, 그리고 노란 산국. 산국은 아직 꽃이 일러서 드문드문 보여. 보랏빛 쑥부쟁이랑 하얀 미국쑥부쟁이가 숲 둘레 길가에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지. 예전엔 미국쑥부쟁이는 우리나라에 없었는데, 요즘엔 미국쑥부쟁이가 쑥부쟁이보다 훨씬 더 많아.

가을꽃 하면 또 꿀풀과 꽃들이 있지. 보랏빛 배초향, 꽃향유, 그리고 참깨도 들깨도 아닌 들깨풀. 꿀풀과 꽃들은 이름처럼 꽃에 꿀이 많아서 벌레들이 쉴 새 없이 꽃을 찾아 날아들어. 벌, 꽃등에, 나비 따위가 정말이지 붕붕윙윙 왔다갔다 정신이 없어. 무슨 잔치이도 벌어진 듯 복작거려. 잠깐 배초향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온갖 벌레들을 감상할 수 있어. 그늘지고 약간 축축한 숲길에선 개여뀌 붉은 자주 빛깔 꽃들이 눈길을 확 잡아끌어. 좁쌀처럼 작은 꽃들이 자잘자잘 조롱조롱 이쁘기도 해. 꼭 손톱 끝에 봉숭아물 살짝 남은 것처럼 하얀 꽃 끝에다 붉은 빛을 살짝 걸친 고마리 꽃도 보여. 고마리 꽃은 하얀 꽃도 있고 붉은 자주 빛깔 꽃도 있어.

가을꽃 가운데 빛깔이 하도 고운 쑥부쟁이랑 개여뀌를 따 모아 꽃 왕관을 만들기로 했어. 강아지풀이랑 바랭이를 꺾어서 줄기만 남기고 씨앗은 훑어 버려. 그렇게 세 가닥을 모아서는 머리 땋는 것처럼 땋아. 끝이 풀리지 않게 한쪽을 다른 사람한테 꼭 잡게 하고 땋아. 우리는 바랭이도 시들시들하고 강아지풀도 줄기가 긴 게 없어 미국개기장 줄기로 땋았어. 다 땋아서 머리 크기에 맞게 띠를 묶어. 거기다 쑥부쟁이랑 개여뀌를 촘촘히 꽂아서 쑥부쟁이 꽃 왕관은 나무가 쓰고, 개여뀌 꽃 왕관은 단이가 썼어. 숲 속 꽃 요정들일까? 숲 속 꽃 왕자들일까? 숲 속 꽃 왕자들이 꽃 왕관 쓰고 쭈그리고 앉아 무얼 했을까?

쑥부쟁이 꽃은 빛깔이 참 곱다
쑥부쟁이 꽃으로 사랑점을 쳤지. 누구랑 쳤을까? 멋진 공주들이라도 생각하며 쳤을까? 아니, 엄마랑 아빠를 생각하며 쳤지. 나무는 아빠만 나무를 사랑한다고 나왔고 단이는 엄마만 단이를 사랑한다고 나왔어. 둘은 사랑점이 무슨 참말이라도 되는 양, 나무는 엄마한테 삐치고 단이는 엄마한테 더 달라붙었지. 꽃 왕관은 미국쑥부쟁이 꽃으로 만들어도 이뻐.

참깨도 못 되고 들깨도 못 되어서 들깨풀, 들깨풀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씨앗이 여문 들깨풀 줄기를 잘라 ‘들깨풀 균형 잡기’를 해 보았지. 이렇게 양쪽 꽃대가 마주보며 돌려서 어긋나는 들깨풀, 배초향, 꽃향유 줄기로 균형 잡는 놀이를 하면 재미나.

씨앗이 여문 들깨풀 줄기를 잘라 ‘들깨풀 균형 잡기’ 놀이를 하는 나무와 단이
꽃대가 마주보며 나오는 쇠무릎이나 단풍잎돼지풀 따위로도 할 수 있어. 마주보는 꽃대 줄기 한 마디를 잘라서 거꾸로 세우는 거야. 그냥 손가락 끝에다 올려도 까딱까딱 균형을 딱 잡는 게 신기해. 정말이지 떨어지지 않고 까딱없어. ‘들깨풀 균형 잡기’를 더 재미나게 만들어 보려고 얼굴을 만들었어. 상수리나무 이파리를 반씩 잘라 윗부분은 머리끝이 뾰족한 얼굴을 만들고, 잎자루 쪽은 둥그스름한 얼굴을 만들었지. 머리끝이 뾰족한 얼굴은 잎맥을 남겨서 ‘균형 잡기’ 줄기 끝에다 살짝 꽂고, 둥그스름한 얼굴은 잎자루를 줄기 끝에다 꽂았지. 자, ‘들깨풀 균형 잡기’ 겨루기를 해 볼까? 누구누구 들깨풀이 더 까딱까딱 잘 설까? 누구누구 들깨풀이 까딱까딱 오랫동안 서 있을까?

‘들깨풀 균형 잡기’ 겨루기까지 했더니 진짜 배고파. 어여어여 맛난 가을꽃 밥상을 차리자꾸나. 반반한 돌 밥상 위에다 신갈나무 깍정이로 그릇 삼아 고슬고슬 개여뀌 밥이랑 향긋향긋 들깨풀 씨앗 가시랭이 모아모아 담아서는 맛있게도 냠냠! 어, 그런데 숟가락은 어디 있냐고? 밤송이에서 나온 쭉정이 끝을 잘라 나뭇가지를 끼우면, 숟가락 여기 있소! 햐~ 맛있다, 맛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쁜 개여뀌를 한 움큼 꺾었어. 집에다 꽂아 두려고 말이야.

개여귀로 고스고슬한 밥을 짓고 들깨풀 씨앗 가시랭이로 반찬을 만들어,반반한 돌밥상 위에 소박한 가을꽃 밥상을 차렸다.
개여뀌 꽃은 일 년이 넘어도 빛깔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고와. 또 ‘들깨풀 균형 잡기’도 가져와서 책상 위에다 놓아두었지. 향기도 향긋하고 바람이라도 불면 까딱까딱 계속 움직이며 재롱을 피워. 얘들아, 너희들도 한번 해 보렴.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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