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15 23:08 수정 : 2006.10.15 23:08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침 조회시간이면 늘 자리를 비우는 아이가 있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담임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이의 자리에는 가방만 덩그마니 놓인 채, 비어 있었다. 가방이 있으니 학교에 온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급한 일이 있겠거니 했다. 아이는 내가 조회를 거의 마칠 때 쯤, 머쓱한 표정으로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를 긁적이며 제 자리에 가 앉는 아이를 보며 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이는 꼭 그 시간이면 자리를 비우곤 했다. 처음에는 급한 일이 있으려니 짐작했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정말 화가 났다. 늘 머쓱한 표정으로, 사정 설명도 없이 제 자리에 앉아버리는 아이의 행동은 나를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주가 지나고 다음 주가 되어도 아이의 그런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곤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양심이 있는 거냐, 그렇게 눈치를 줬으면 알아차리고 행동을 고쳐야 되지 않겠느냐, 조회 시간이면 늘 자리를 비우는 이유가 뭐냐? 내 채근에 평소 내성적이었던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화장실에 갔다는 거였다. 집이 시민 아파트인데, 공동 화장실이어서 아침 시간에는 도저히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며, 그래서 학교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다고 아이는 떠듬떠듬 사정 설명을 했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경험으로 아이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화장실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살던 내게 아이의 사정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벌써 이십 년도 전의 일이지만, 그 일은 내 기억 속에 불로 지진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열정만 있고 이해는 부족했던 교직 초년생 시절의 일이었다.

아침이면 늘 지각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조회 시간이면 그 아이의 자리는 거의 날마다 비어 있었다. 일 교시가 끝날 무렵에 오는 날도 많았고, 어떤 때는 조회와 일 교시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에 와서도 오전 시간은 늘 엎드려 졸기 일쑤였다.

활발한 성격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늘 입가에 붙어있어, 어려움이라곤 없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나는 아이를 불러 상담을 했다.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뗀 아이는 집안 사정 때문에 지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누워 계시고, 대신 일 나기시던 어머니마저 쓰러져 전기 요금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고, 자기가 패스트푸드 점에서 자정이 넘도록 아르바이트를 해 버는 돈으로 전기요금을 내야 전기가 끊기지 않는다고, 아이는 이야기 끝에 그래도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그 뒤 날마다 지각을 하는 그 아이에게 “또 늦잠 잤지? 내일도 늦잠 자라” 하며 나는 야단보다는 농담을 했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곤 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 또 비슷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미 나는 경험이 행동을 바꾸어 낼 만큼 제법 나이 든 교사였다. 그래서 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 아이와 교감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교직은 늘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곳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그에 대처하는 교사의 역할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경험이 교사의 생각을 바꾸어 내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한다. 그래서 경험은 교사의 무기인지도 모른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