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16 17:43 수정 : 2006.10.16 17:43

오늘은 방송통신고등학교 출석수업일이다. 매달 1,3주 일요일은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하며 그동안 방송을 통해 공부 했던 내용을 확인하는 날이다. 이 날은 모두 나이와 관계없이 열여덟 살 여고생으로 돌아간다. 아침 일찍, 교실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걸음걸이에 생기가 넘친다. 어린 10대들의 교실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독서’ 과목을 맡아 꼭 읽어야할 책을 소개하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2학기에는 ‘자서전 쓰기’를 하고 있다. 교재에 나온 내용을 단순하게 반복하기 보다는 자기 인생길을 되돌아보면서 삶을 더욱 알차게 꾸며 보자는 의도였다. 진지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더 감동을 받는 것을 보면 방송고 수업이야말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모범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우리의 청․장년기를 써볼 거예요. 우리가 첫 시간에 시대 구분한 연대표에 보면 2기라고 편의상 나눈 시기가 됩니다. 자, 일단 이 시기의 제목을 붙여 볼까요? 멋지게 붙여보시고 그 이유도 써 보세요.”

학생들은 이미 인쇄가 된 양식에 맞춰 또박또박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작가 같으세요.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써보실까요? 오늘은 집중이 잘 되도록 피아노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아름다운 연주가 교실에 가득 퍼져나갔다.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반짝 빛났다. 어느 새 교실은 고요해지고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다보니 도저히 울음을 참을 수 없었나보다. 눈물은 쉽게 전염이 된다. 다들 눈 가가 벌겋다.

“울지 마. 아직 살아야 할 시간이 더 많아. 힘내.”

반장 언니(학생들끼리는 나이에 따라 언니, 동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교사는 학생들 이름 뒤에 ‘씨’라는 호칭을 붙인다.)의 따뜻한 말에 오히려 울음은 더 커졌다. 울고 싶은 때는 그냥 울어야 한다. 그래야 응어리가 풀리지. 그냥 두라고 했더니 모두들 글을 쓰다말고는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반장 언니, 꼭 엄마 같네요.”

“선생님이 책임지세요. 왜 울리세요.”

젖은 눈 속에 웃음이 머물렀다. 다시 학생들은 머리는 숙이고 열심히 써 내려 갔다. 처음 준 원고지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도 모자라 더 가져가야겠다는 학생도 생겼다. 어떤 학생은 자기 아이와 함께 써보겠다며 더 가져가기도 했다.

“선생님, 참 행복해요.”

다 쓰고 난 후에도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학생 하나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나오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들으니 참 좋아요. 집에 있어 보세요. 어디 이런 시간이 가능한가.”

얼굴에는 행복감이 가득했다. 표정이 참 예뻤다. 다음 시간이면 ‘자서전쓰기’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누구 있겠는가마는 대부분 특별한 사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는 학생인지라 오늘 수업이 더 감동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고마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