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보면, 선생님의 교육방침은 독특한 데가 있었다. 우열반을 운영했는데, 반 명칭도 다른 학교와는 달리 조(組)라고 하고 숫자대신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효(孝)하고 붙였다. 이는 소위 맹자(孟子)가 말한 사덕(四德)에다 효제충신(孝悌忠信)에서 두 자를 따온 것이었다. 이것만 보아도 학력신장뿐 아니라 인성교육에서도 얼마나 공맹(孔孟)사상에 입각한 철저한 교육을 시켰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 교장선생님이 조회 때 훈화하시는 걸 보면 독특한 자세를 취하셨다. 오른손을 아랫배에 대고 말씀을 하셨는데, 들리는 말로는 맹장염을 앓고 계셔서 그런 거라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을 텐 데도 굳이 그러하지 않는 건 부모님이 물러주신 육신에 칼을 댈 수가 없다하여 견디고 계신 것이었다. 그야말로 공자 님이 말씀하신 대로'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하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신 것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감독하시다가 교사가 없는 교실이 보이면 들어오셔서 특강하시기를 즐겨하셨다. 한번은 자습시간에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셨다. 들어와 충효이야기를 하시며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셨다. "아비가 다른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되겠느냐" 학생들은 느닷없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아비가 곤경에 처하도록 만든 것은 자식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마땅히 상대하여 분을 풀어 드려야 하느니라" 그 말을 듣던 우리는 모두 의아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훗날에 우연히 논어의 말씀을 접하니 그런 실례가 있지 않는가. 논어 자로 편의 이야기다. 섭공이라는 귀족이 공자 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고장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 아비가 양을 훔친 것을 아들이 그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님은 "우리고장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기며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기나니, 정직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수개월 전, 읍내에 볼일이 있어 들은 김에 교정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학교는 산전벽해라는 할 만큼 변해있었다. 그런 가운데 눈에 띄는 한 조형물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안태시 교장선생님의 흉상과 공적비였다. 나는 4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온화한 모습을 대하니 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났다. 그런 중에서도 뇌리를 스치는 것은 늘 강조하신 "효도하라, 그리고 면학에 힘써라"는 말씀이 쟁쟁하게 귓전을 때리는 것이었다. (2006)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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