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2 18:53
수정 : 2006.10.22 18:56
책꽂이
세상을 단적으로 보면 두 개의 축이 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강한 자는 대개 전쟁을 좋아한다. 명분은 약하고 무능하고 쓸모없는 다른 국가를 교화한다는 것. 2차세계대전 때도 그랬다. 독일은 혈통적으로 ‘우수한’ 게르만족이 다른 무능한 종족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강약과 선악의 논리는 비단 국가나 사회간에만 유효한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 논리의 속성이 차별과 오만, 독선, 증오, 파괴가 숨어 있기에, 한 국가나 사회 안에서도 악하고 무능한 존재들을 향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현대사회학의 ‘중심-주변부’ 이론은 이를 일부 설명한다.
암울했던 나치 시절, 독일이 제거해야 하는 대상은 비독일 국가들만은 아니었다. 내부적으로도 약하고 장애가 있고, 다른 생각을 하는-나치 말로는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없어져야 했다.
특히 순수 게르만 혈통 중에서도 ‘선천성 및 후천성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학살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 결과 1939년부터 독극물을 주입하거나 굶기는 방법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5천여명의 장애아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살 가치가 없는 밥벌레’ ‘비생산적인 국민’이라고 조롱하며.
안톤은 그 불필요한 인간 중의 하나였다. 전차 사고로 뇌를 다쳐 말을 더듬는 언어 장애를 갖고 있어 ‘살아갈 자격이 없는 아동’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죽어 마땅한 존재인 안톤을 부모된 처지에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안톤>은 ‘살아갈 자격이 없는’ 여덟 살 소년과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사회적, 국가적 차별과 폭행과 죽음의 장애물들을 헤쳐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실화 소설이다.
시간의 흐름에 충실한 안톤의 이야기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아림의 연속이다. 장애아의 규정을 벗어날 생각으로 들어간 학교에서 안톤이 겪는 차별과 괴롭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생일놀이, 전쟁놀이 등에 끌려가 아이들로부터 무참히 밟히고, 맞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실 안에서도 총통(히틀러)을 숭배하는 교사들한테 수시로 뺨과 손바닥을 맞고 비웃음을 당한다. 차별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이번엔 그를 강제로 끌고가 죽이려는 정부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하는 몸부림에 시달린다. 몇년 동안이나 다락방과 친척집 등에 숨어 지내고 사망증명서까지 발급받아 존재를 연명해 보려고 몸부림친다. 눈물겨운 사투는 독일이 패망하고 나서야 끝난다.
‘인간은 왜 죽나요?’ ‘인간은 뭐로 살아요?’ ‘왜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괴롭혀요?’…. 또래에 비해 궁금한 게 많은 소년 안톤이 쏟아내는 질문들은 우리 사회 내면에 숨어 있는 증오와 차별, 비인간성의 정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내면이 죽은 사람은 권력과 주먹, 명령을 필요로 한다”는 안톤 엄마의 말은 이 시대 강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볼 것을 주문하는 기도문으로 읽힌다.
독일 연방대통령 구스타프 하이네만의 평화로운 정치활동과 평화 교육활동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구스타프 하이네만 평화상’ 수상작이다. 엘리자베스 쵤러 글, 유혜자 옮김. 대교출판/9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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