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22 19:07 수정 : 2006.10.22 19:07

연쇄살인범에게도 변호사는 필요하다

이승은/18살, 홈스쿨러

많은 이들이 아직도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기억한다. 살해한 사람들의 엄청난 수와 잔인한 범행 방법으로 악몽의 대명사 격이었던 그가 체포되고 얼마 뒤 국어시간이었다. 시끌벅적한 수업 분위기 속에 문득 누군가의 입에서 ‘유영철’이라는 이름이 튀어 나왔다. 그러자 교실 여기저기서 유영철이 저지른 범죄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21명이나 죽였대요.” “진짜 나쁜 사람이래요.” 결국 4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졌다. 유영철은 용서의 여지가 없는 인간이고. 그 때 어떤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그러면 그런 못된 놈을 변호해주는 변호사는 양심도 없어요?” 선생님께서는 짧게 말씀하셨다. “변호사는 돈이라면 뭐든 하는 족속이야.”

나는 누군가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거침없이 변호사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그러나 사실 그 때까지 단 한순간도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내게 있어 변호사란 아버지의 직업이고, 그러므로 내게 가장 익숙한 직함이며 꽤 괜찮은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 그저 내가 이루어야만 할 것 같은 무언가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유영철 이야기를 듣던 그 날 나는 내가 거의 10년 동안이나 변호사라는 꿈을 가져왔는데도 마땅한 이유를 생각해본 일이 없음을 깨달았고 무척 혼란스러웠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때 내게 답을 준 건, 변호사 아버지도 아니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칭송만 하는 주변 어른들이 아닌, 오히려 변호사를 “그런 못된 놈을 변호하는 양심도 없는 족속”이라고 치부해 버린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었다.

유영철은 분명 극악무도한 살인마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볼 때 살인을 저지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는 죽어 마땅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한 인간으로서, 보장 받아야할 최소한의 인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의 인권을 생각하는 것은 사실 유영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유영철과 달리 가장 존중받기 힘든 이의 인권까지 생각할 줄 아는 진정한 인간임을 방증하기 위해서다.

그가 저지른 죄의 무게 때문에 무시되기 쉬운 권리를. 모두가 유영철에게 돌팔매질하고 그의 권리를 부정할 때 자신에게도 그 돌이 날아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유영철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방패가 되는 것은 변호사다. 죄를 저지르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 남들보다 갖지 못하여, 배우지 못하여 소외당하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변호사의 소중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유영철까지도 변호하는 것’이 변호사들의 존재 이유다.


누구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동정심을 느낀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피해를 본 사람들, 혹은 손해를 본 사람들. 사람들의 동정심은 보통 피해자에게로 쏠리고 그것은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피해자에게 동정심이 생기는 만큼 가해자에게 증오를 느낀다. 그 증오 때문에 가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하고 싶다. 그 날 ‘유영철 같은 놈을 변호하는 족속’이라는 말은 가시 돋친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사실 그보다 더 변호사라는 직업을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오늘도 나는 변호사를 꿈꾼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