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22 20:09 수정 : 2006.10.22 20:11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자는 서양 아이들 가운데는 걸음마를 할 때 쯤부터 담요나 베개, 곰 인형 같은 것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혼자 놀거나 혼자 잠잘 때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모 대신 어떤 대상(transitional objects)에 사랑을 쏟는 것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부모에 대한 사랑은 싫지만 연애는 뭔가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에 대해 열광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성호르몬은 분출되고 자극은 넘쳐나니,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의 열정을 해소해야 할 터이다.

최근엔 인터넷과 케이블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주로 대중문화의 우상에게 청소년들의 애정이 몰려서, 팬카페와 안티카페의 활동의 열기는 때로 과거 나찌 시대의 집단적 열기를 능가하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와 거리를 두고 사는 21세기 청소년들에게 대중문화는 어쩌면 ‘존재의 이유’는 아닐까. 딱히 놀만한 공간이나 시간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일 년에 몇 번 콘서트를 간다거나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는 마음의 보약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 잘 놀고 잘 쉴 줄 아는 사람들이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하니까. 365일 책상앞에 있으면서 딴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하루 화끈하게 놀고 마음을 다잡아 공부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대중문화계의 스타에 너무 지나치게 집착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때다. 청소년들은 아직 확고하게 자아개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어떤 대상과 동일시한다거나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자기 할 일은 통째로 잊어버리고 스타의 집 앞에서 며칠씩 머문다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스타에게 테러를 가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스타에 대한 열정은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괴테가 쓴 베르테르의 슬픔을 모방해서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졌다거나,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들을 아마 기억할 것이다. 만약 자녀가 병적으로 스타에 대한 격렬한 애증의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생활을 해 나가지 못한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또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우선은 청소년 시기에 이상화(idealization)할 수 있는 대상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부모를 가장 존경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물론 영광이고 흐뭇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 앞에 흠결없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유혹도 많고 도덕적 해이가 범람하는 시대에 좋은 부모 노릇도 사실 쉽지 않다.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위인전이나 자서전을 기획하거나 쓰지 못하는 출판 문화계쪽도 조금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어린 아이들에게 전집으로 위인전을 사 안겨 아이들 입맛만 버려 놓는 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두번째는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자신의 감정을 어른들에게 풀어 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짓만 하고 돌아다닌다는 둥, 경박하다는 둥, 비난만 한다면 아이들은 마음을 닫고, 부모에 대한 서운함만 커져 되려 스타에 대한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진다. 마치 친구처럼, “나는 누가 이래서 좋고 누구는 이래서 싫다” 라고 자녀들과 함께 스타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아이들은 부모들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이들의 대중문화 취향을 이용해 교육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면 더욱 금상첨화다. 예컨대, 논술훈련을 굳이 학원에만 맡기지 말고, 대중문화 연구서나 스타의 자서전 등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아이들의 비판 정신을 고양시킬 수도 있다. 또 대중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아이들의 예술과 비즈니스에 대한 안목을 키워 줄 수도 있다. 단순히 고전음악은 고상한데 유행가는 경박하고, 소설은 진지한데 영화는 상업적이라 하기에는 요즘 문화의 모습은 너무 다양하다.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가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못한가? 모든 삶의 방식과 취향은 다 나름대로 향기와 가치가 있다.

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 nleekr2000@yahoo.com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