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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9 19:41 수정 : 2006.10.29 20:01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철완 아톰> <정글 대제> <블랙 잭> <불새> <리본의 기사>…. 요즘 아이들에겐 낯설겠지만, 부모 세대에겐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만화들이다. 데즈카 오사무, 그는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만화·애니메이션의 신’이었다. 그 데즈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면서 쓴 자서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그런데 제목부터 특이하다.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의 삶에서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길래 자서전 제목도 ‘어머니’로 시작했을까? 데즈카가 털어놓은 성장 배경 이야기에 그 답이 숨어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왜소하기 짝이 없었다. 키는 다른 아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몸이 몹시 허약해 걸핏하면 울곤 했다. 이지매(집단 따돌림)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이지매를 피하기 위한 그가 선택한 수단은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을 갖는 것. ‘만화 그리기’가 그것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엄청나게 많은 만화를 그에게 사줬고 어머니는 만화를 읽어주기까지 하며 그를 격려했다. 학교에 가기 전 밤새 그린 만화를 보여줄 때마다 어머니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끊임없이 습작을 거듭하던 그는 5학년 때 노트 한 권 분량의 만화를 그려 반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선생님께 빼앗겼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를 혼내기는커녕 “만화를 이렇게 잘 그리는지 몰랐다. 이제는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만화를 그려라.”고 말하며 만화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데즈카는 만화를 그 무엇보다 좋아했지만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두 갈래길에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동경에 가서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어머니의 답은 간결했다. “만화가 그렇게 좋다면 동경에 가서 만화가가 되거라.” 많은 돈과 명예가 따르게 될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지 못해 갈등하던 데즈카에게 어머니의 한 마디는 그 어떤 위안이나 격려보다 큰 힘을 실어줬다.

데즈카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경험을 토대로,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 또는 창작과 같은 대사건을 부모가 귀찮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성심껏 받아들임으로써 아이들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특출한 재능이 있기 마련이라며 사소한 취미라도 어렸을 때부터 손을 놓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 구체적인 윤곽이 잡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마음 속에 적어도 두 가지 정도의 소망을 품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데즈카는 여러 가지 주변 환경 때문에 그 중 한 가지가 좌절된다고 해도 다른 한 가지가 남게 될테니 모든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담 및 요즘 아이들에게 전하는 말 외에도 그가 남긴 300여편의 만화에 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있다. 데즈카는 그것을 한마디로, ‘생명의 소중함’이라고 정의한다. <아톰> <제로 맨> <블랙 잭> <불새> 등에서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인간성 상실, 자연파괴를 경고하거나 반전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테마는 어디까지나 ‘생명의 존엄’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이 맞다면 그는 만화가이자 철학자였던 셈이다. 정윤아 옮김. 누림북/1만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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