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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9 21:04 수정 : 2006.10.30 14:10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논리 관심법

혼잡한 지하철 안. 앉아있는 젊은 여자와 그 앞에 선 잘 생긴 남자 사이에 수줍은 눈빛이 오간다. 둘은 모르는 사이다. 서로 외면하고 마주치기를 몇 차례. 마침내 여자가 살짝 웃으며 머뭇거리듯 말한다. “저 다음 역에서 내려요.”

인기를 끌었던 광고 장면이다. 왜 여자는 “저 다음 역에서 내려요”라고 했을까? 설명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그 이유를 안다. 남자에게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여자가 “이런 마주침도 인연인데 우리 사귈까요?”라고 했다면 어떨까? 가슴 설레는 달콤함은 단번에 반으로 줄어들 터다. 이처럼 결론은 노골적일 때보다 감추어졌을 때 더 강렬하게 다가오곤 한다. 또 다른 광고 문구를 예로 들어보자.

“프로는 아름답다. 그녀는 프로다.”

분명한 두 문장은 독자들을 “(따라서) 그녀는 아름답다.”는 명쾌한 삼단논법의 결론으로 이끈다. 그런데 광고 문구에서 이 결론은 빠져있다. 왜 뺐을까? 결론을 직접 보여 주기보다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할 때 호소력이 더 커지는 탓이다.

이제 내가 일상에서 펼치는 논리들을 되돌아보자. 내가 얼마나 훌륭하고 잘난 사람인지를 자랑하고 싶은가? 아니면 누군가의 파렴치한 행동을 세상에 고발하고 싶은가? 이럴 때는 주장을 펼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들만을 조목조목 나열해 보라.

예컨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철학자 빅터 프랑클(Victor Frankle)은 나치의 잔인함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았다. 수용소 생활 모습 하나 하나를 그의 책들 속에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굴뚝에서 부모 형제의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나오는 건물 옆에서 일해야 하는 유태인들, 눈을 부릅뜬 시체를 마주하고서도, 너무 배가 고파 허겁지겁 마른 빵조각을 몰아넣는 자신의 처지 등. 그의 글 속에는 ‘살인마’, ‘악마’ 등등의 격한 표현이나 증오는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치의 만행에 치를 떨게 된다.


설득 기술은 토끼몰이와 비슷하다. 날뛰는 토끼를 뜀박질로 잡기는 어렵다. 올가미를 미리 만들어 놓고, 그 쪽으로 토끼를 몰아가라. 올가미 쪽으로 난 길은 외통수이기 마련, 토끼는 열심히 달리다가 스스로 덫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설득도 마찬가지다. 이유와 근거를 꼼꼼하고 담담하게 나열해 주라. 그리고 최종 판단은 상대에게 맡겨 두어라. 논리를 정교하게 설계했다면, 상대는 나의 의도대로 결단을 내릴 것이다. 유능한 작가는 절제의 미덕을 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에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모습은 처연한 감동을 주지만, 옷을 찢으며 목 터져라 우는 모습은 난감할 따름이다. 감동과 수긍은 상대의 몫이다. 내가 한 말에 스스로 감동하고 설득당하는 지경까지 나가지 말라. 최종 결론은 상대의 손에 넘기는 미덕을 발휘해야 논리는 비로소 위력을 발휘한다.

반면, 최종 판단을 내게 넘기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항상 그 결론을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논리 토끼몰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협지에서 흔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늙은 두목은 분노에 찬 패거리들 앞에서 주인공에게 말없이 칼을 내민다. 주인공은 떨리는 손으로 칼을 받아든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당연히 원수를 갚는 내용일 터다.

만약 그 뒤에 주인공이 살인죄로 붙잡혔다면 어떨까? 이 때 두목은 살인을 지시 했고, 나는 거기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두목은 칼을 전해 주었을 따름이다. 살인 지시는 주인공의 머리로 ‘해석’된 결과이지 ‘사실’은 아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결론을 떠넘기는 논리로 이루어진다. 학원 광고에는 곧잘 명문대학의 교표가 등장하고, 대출 서비스 홍보에는 고급스런 휴양지 모습이 등장한다. 상대가 내가 내리기를 바라는 판단은 무엇일까? 누구도 학원만 다니면 좋은 대학에 간다고 말한 바 없다. 대출 받으면 생활이 한결 여유로워지리라 약속한 이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대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드리고 쉽사리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고 만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弓裔)는 관심법(觀心法)으로 사람들을 휘둘렀다. 관심법이란 마음을 눈으로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읽는 기술이란다. 일상의 논리에서도 관심법이 필요하다. 설득이란 결국 상대방이 마음의 물결을 스스로 돌리게 하는 작업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결론이 무엇인지를 먼저 가늠해 보자. 그리고 논리를 펼치기 전에 상대가 어떻게 결정 내리기를 원하는지 먼저 되물어 보라. 마음을 읽으면 논리도 보인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다음 논의가 암시하는 결론이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적어봅시다.

1. 엘리트들은 스마트 청바지를 입습니다.

2. 과거 조선과 소련의 공통점은 경제보다 평등과 같은 이념을 앞세우는 나라였다는 데 있다. 이런 국가들은 모두 사라진 반면, 자유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나라들은 지금도 하나같이 잘 살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 논리보다는 인권과 평등 같은 이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다.

3. 미국의 어느 학교는 교내에서 패스트푸드 판매를 금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급식도 야채와 건강식품 위주로 바꾸었다. 그러자 몇 년 만에 학교 폭력이 절반 이하도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음식과 폭력적인 성격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급식에는 가공식품이 유난히 많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가격도 적당하는 이유에서다.

체조방법-우리의 생각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글이나 말의 논의를 따라가기에 앞서, 전체 분위기를 가늠해 봅시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결론이 무엇인지를 짚어봅시다. 그리고 그 결과가 과연 바람직한지, 따를만한지 냉철하게 분석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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