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9 21:44
수정 : 2006.10.29 21:44
이나미의 어른생각, 아이마음
한편으로는 수시입학 준비하랴, 수능 공부하랴, 수험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은 일년 내내 정신이 없다. 입시가 코 앞에 닥친 수험생 부모들도 혼란스러을 정도로 한국의 입시제도는 이해해서 따라가기가 힘들만큼 자주 변하고 복잡하다. 운 없어 떨어지는 학생들도 보호하고, 사교육도 차단하고, 우수한 학생도 뽑고…. 열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 보니 모두 놓치는 형상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전적으로 자녀 입시에 매달리는 열성적인 고학력 전업주부 어머니들을 제외하고 과연 누가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그 방대한 대입제도의 보폭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맞벌이 부부는 입시제도와 대학의 모집경향을 분석할 시간이 없고, 의욕과 시간은 있어도 능력이 안되는 부모들은 복잡한 입시제도를 꿰뚫을 수가 없다. 공부에 전념하기만도 힘든 학생들로서는 절차를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이 들기에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잡무 많고 학생들에게 지치는 담임교사가 수십 명의 아이들 진학 지도를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해내야 하니 학부모들로서는 학교만 믿고 맘 편히 지낼 수도 없다.
선진국의 경우 담임 교사 이외에 진학지도만을 전문으로 해 주는 상담교사가 따로 있다. 담당 학생도 많지 않아,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진학지도 교사는 마치 가족처럼 자기 전담 학생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입시 제도와 교육에 대한 워크숍 등을 통해 해마다 기존의 정보도 업그레이드하니, 학부모나 학생들로서는 입시 과정만을 전문적으로 오랫동안 지도해 온 교사를 따르고 신뢰하게 될 수밖에 없다. 막연하고 낡은 정보로 적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녀의 앞날을 함부로 좌지우지하려는 무지한 부모에 견줘, 입시전담 교사는 적성검사와 상담 등을 통해 학생 개개인을 잘 파악해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예산이 모자라 그런 전문 교사를 뽑을 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교장실의 책상 하나가 300만원이 넘는 학교도 있다 하고, 부유한 집안의 두서너 학생 사교육비만 몇 달 모아도 좋은 입시 전담 교사 일년치 월급이 된다. 하다 못해, 어떤 학원보다 입시제도를 환하게 파악하고 있는 고학력 어머니들을 자원 봉사자로 학교에 상근하게 하고, 정부에서 그 만큼의 다른 보상을 해 주면 어떨까 하는 궁색한 공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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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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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입시 지도를 전적으로 떠 맡고 삶의 의미를 자녀의 대학입시 성공에만 두는 어머니가 많은 한국 사회는, 여성의 건강한 사회 참여는 차단한 채 모성의 사적인 기능만 과장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깊은 병이 든 게 틀림없다. 복잡한 입시제도지만 전문 교사와 한 팀을 이루어 그 과정을 견디고 이루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큰 배움의 기회다. 입학 시험의 어려운 과정과 싸워 이기는 성취감조차 어머니가 빼앗아가고 나면, 아이들은 평생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생하게 될 것이다. (요즘에는 조부모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자기들의 사치는 물론 손자들의 사교육비마저 당당하게 받아 놀고 먹는 젊은 엄마들이 많다니!) 한국의 입시제도가 서구 선진국에 견줘 그 제도 자체가 유별나게 흉악한 것은 아닐 것다. 다만, 활용할 수 있는 전문 교사가 부족한 채 입시 매니저 어머니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 자녀들은 의욕 없이 의존하게 되는 현실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nleekr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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