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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5 17:07 수정 : 2006.11.06 16:29

괴물 셀리반

숲귀신 레쉬, 물귀신 보댜노이, 집귀신 도모보이와 키키모라…. 러시아 귀신 이름들이다. <괴물 셀리반>은 러시아 귀신에 얽힌 동화다. 처녀 귀신, 몽당 귀신, 빗자루 귀신 등 우리 귀신들처럼 이들 러시아 귀신들도 무섭다. 얘기만 들어도 소름이 오싹 돋는다.

셀리반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독하다. 인적이 끊긴 숲 근처의 빈 여인숙을 지키는 셀리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유인해 살해하고 재물을 훔치는 흉악한 강도라고 알려져 있다. 또 이런저런 동물이나 물건으로 둔갑해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누구도 셀리반의 강도 현장을 보거나 나쁜 마법을 부리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그가 괴물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의심할 여지 없는 ‘괴물’이었던 셀리반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괴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크리스마스에 주인공의 고모가 잃어버린 거액의 돈을 찾아준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알고 보니 ‘괴물 셀리반’은 애초부터 없었다.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랐지만 셀리반은 애초부터 성실하고 정직한 아이였다. 남의 가게에서 일할 때 최선을 다했고, 남을 속이거나 괴롭힌 적도 없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소녀를 거둬 평생 돌봐준 100% ‘천사표’였다. 사람들은 단지 셀리반이 얼굴에 ‘불처럼 붉은 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인물이라고 몰아부치고 그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판타지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이런 전개에 적지 않게 당황할 게 분명하다. 나쁜 짓을 일삼는 괴물을 통쾌하게 물리치는 결말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중반 이후까지 계속되던 스릴과 긴장감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렇지만 환타지의 스릴이나 긴장감에 비견할만한 ‘뭔가’가 있어, 책을 다 읽고도 오랫동안 손에서 놓지 못한다. 막연한 여운 같기도 한 그 ‘뭔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람들의 근거없는 편견과 선입관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이다.

실상 평범한 사람을 괴물로 몰아 죽게 하는 무서운 편견과 선입관은 인간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다. 작게는 학교에서 공부를 못 한다, 잘난 체 한다, 키가 작다 등의 이유로 강제하는 왕따가, 크게는 종교가 다르다, 독재국가다, 우리 땅을 차지하고 있다 등의 이유로 전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대부분 편견과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괴물’은 셀리반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신부의 말씀대로 “의심이 셀리반의 선한 양심을 볼 수 없게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허튼 소리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다시 그 어둠을 재생산했던 것이다.

이런 ‘악’과 ‘괴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과 마음을 깨끗하게 만든다면 답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다림/8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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