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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5 21:07 수정 : 2006.11.06 16:33

아낌없이 주는 나무 /

# 장면 하나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여섯 바퀴 도는 오래달리기를 했다. 은주가 여자 아이들 가운데 1등으로 들어왔다. 은주는 또래들보다 키가 작고, 아빠와 단 둘이 산다. 학교 핸드볼 선수라 아침, 저녁으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운동하느라 교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적다 보니 친한 동무들이 많지 않다.

은주가 1등을 하자, 몇몇 목소리 큰 아이들이 체육 선생님께 따졌다. 은주가 다섯 바퀴만 돌았다는 거다. 은주가 분명히 여섯 바퀴를 뛴 걸 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아, 재수 없어. 쟤가 어떻게 1등이야?” “너 5바퀴만 뛰었다며?”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은주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이들한테 따돌림 당하는 거 싫어요. 그냥 다시 뛸래요.” 결국 아이들은 여섯 바퀴를 다시 뛰었고, 또다시 은주가 일등을 했다.

# 장면 둘

수학 시험을 쳤다. 공부 잘하는 애들 한 둘만 빼고 거의 90점 이하였다. 그런데 우리 반 양호가 96점을 받았다. 양호는 누나와 함께 할머니 손에서 큰 아이다. 평소에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편이었는데도 아이들은 대놓고 말했다. “야, 너가 96점 받았다구? 우연이겠지~” “너 누구 꺼 보고 한거 아냐?” “솔직히 말해봐. 그 점수 니 점수 아니지?” 아이들이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아니거든. 이거 내 실력으로 한거 맞거든.” 말해도 소용없었다. 모둠 아이들조차 내 눈을 피해 계속 괜한 시비를 걸었나 보다. 잘 나온 점수로 기뻐해야 할 양호는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양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 버렸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잠잠해졌다.


요즘 아이들은 국어책의 ‘인권과 가치’라는 단원을 배우고 있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배우면서 나름대로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하면서 진지하게 수업을 했다.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많은 사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같이 안타까워하고 공감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차별과 불평등은 공부 시간에 토론했던 그 인권 문제하고는 별개라고 여긴다. 내가 부모에게, 교사에게, 동무들에게 차별당하는 건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 그렇지만 내가 만만한 동무들에게 함부로 하는 건 ‘차별’이 아니라 그냥 별 뜻 없이 하는 거야. 그런데 그것 가지고 뭘 ‘차별’이니, ‘인권’이니 해. 선생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예요? “아니, 절대로!”

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ejejr@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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