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2 17:13
수정 : 2006.11.14 00:46
똥장군하고 놀면 안돼요?
월요일은 논술 학원, 화·목요일은 미술 학원, 수·금요일은 방문 학습지, 토요일은 영어 학원…. 초등학교 3학년 석이의 일상이다. 반면 부산서 전학온 장군이는 학원에 안 다닌다. 집에 돌아오면 고모네 식당에 들러 음식 찌꺼기를 가져다 개를 먹인다. 아빠, 엄마도 없이 병든 할머니, 6학년 누나랑 같이 산다.
키는 멀대 같이 크면서 옷은 자주 갈아입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장군이를 반 아이들은 ‘똥장군’이라 부르며 멀리 한다. 한데 석이는 그렇지 않다. 키가 작다고 축구 시합에 끼지 못해 속상해하는 자신을 장군이가 편들어주는 등 따뜻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다. 석이는 장군이랑 머리가 빙빙 돌도록 뺑뺑이를 타고, 산비탈 비밀 아지트에서 나무타기 놀이를 한다. 짝꿍이 되어 많은 얘기도 나누고 집에도 초대한다.
<똥장군하고 놀면 안돼요?>는 아이들의 진하고 순수한 우정에 대한 얘기다. 한 마디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앵돌아졌던 마음을 스르르 풀리게 하는 힘이 둘 사이엔 있다. ‘꼬맹이’ ‘똥장군’이라고 허물없이 이름을 부르며 어울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 뺑뺑이를 타면서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은 한 편의 영화 같다.
특히 똥장군이라며 외면하던 석이가 장군이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우정을 키워가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함께 친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음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성장기 청소년들이 참된 어른이 돼가는 공부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어른들은 이런 ‘아름다운 우정’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부모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 사귀면 나쁜 길로 빠진다는 것. 그래서 석이 엄마도 담임에게 전화해 짝꿍을 바꾸게 하고, 집에 놀러온 장군이를 매몰차게 돌려 보낸다. “친구는 아무나 사귀면 안 돼. 너보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애를 사귀어야 한다고”라고 말하며.
모든 기준이 ‘공부’ 하나로 귀결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배려니 양보니, 인정이니, 순수함이니 하는 인성은 어디로 간 것인지, 교육이란 도대체 왜 시키는지, 세상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아이들에겐 어른들의 엉터리같은 잣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 동화에서 석이와 장군이는 깊은 우정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쌓고 지켜가는 용기를 갖고 있다. 장군이는 석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사를 가면서도 아지트에 숨겨 놓은 서로의 보물을 바꿔놓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석이에게 심어준다. 석이 또한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대한민국을 다 뒤져서라도 장군이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라며 영원한 우정을 다짐한다. 현실에서도 석이와 장군이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꽃피우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까막눈 삼디기> <피양랭면집 명옥이>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 등의 저자 원유순 선생님이 새로 내놓은 동화다. 아이앤북/8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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