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2 17:32
수정 : 2006.11.12 17:35
1318리포트/
“오늘이 11월 몇 일이지?” 우리 반 교실에서 하루 한 번씩 새어나오는 질문이다. 절대 게을러서가 아니다. 시간 감각이 없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고3으로서, 수험생으로서, 달력 날짜보다는 ‘D-몇 일’이라는 표현에 익숙해져 있다.
10, 9, 8, 7, 6….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비장한 기운마저 감도는 3학년 교실의 실내 온도는 섭씨 19도. “혹시 감기에 걸릴까 불안해서 히터를 틀 수가 없어. 이제는 실력보단 체력이잖아.” 웃으며 말하는 공현주(18)의 얼굴에 초조함이 비친다. “감기 걸렸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근처에도 안 와.” 코를 훌쩍이며 김샛별(18)이 덧붙인다.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들의 말씀도 예전과 다르기는 마찬가지. 더 이상 ‘공부하라’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이제는 컨디션 유지가 제일 중요해”하는 충고 아니면 “수능 끝나고 학교 착실히 나오렴”하는 당부가 전부다. 당사자인 우리는 심지어 고3이라는 사실조차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데, 날짜는 하루하루 가고 주위 사람들의 태도가 매일매일 변하는 것을 보면 정말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오긴 했나보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수시 1학기에 합격한 사람. 그 다음으로 부러운 사람은? 수시 2학기에 합격한 사람. 소원은 자고 일어나면 수능 다음날인 것. 수능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1순위, 죽은 듯이 잠자기. 2순위, 문제집 죄다 처분하기. 3순위, 알코올 섭취(!). 미리 짠 것도 아닌데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스스로 절감하지 못할 뿐이지 역시 우리는 고3인가보다. 고3은 수험생이라는 것 외엔 아무런 정체성이 없는 것일까.
일과가 ‘수업듣기 아니면 공부하기’이다보니, 잠자는 시간까지도 공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면서 공부하는 꿈을 꾼다는 친구들도 있다. 이승학(17)은 그 날 들었던 외국어 강의를 반복해 듣는 꿈을 자는 내내 꾸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느긋한 나까지도 수능 성적표를 받는 꿈, 수능을 보는 꿈은 며칠에 한 번 꼴로 꾸는 걸 보면 대부분의 학생이 자면서도 시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고 하루 24시간을 모두 공부에 쓸 수는 없는 일. 수험생도 인간이다 보니 때론 휴식이 필요하다. 등굣길 오색 낙엽을 보면서 수능이 다가온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친구에게 낙엽을 뿌리며 오래된 광고를 패러디 해보기도 하고, 예쁜 단풍잎을 주워 머리에 꽂고 연출 사진도 찍는다. 은행 냄새에 장난스레 코를 막으며 친구에게 “손이나 씻으라”는 농담 섞인 핀잔도 준다. 정혜림(18)은 “수능 때문에 지치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니까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사소한 일에도 즐겁게 웃을 수 있어서 위로가 된다”며 웃는다. 김송이(17)가 맞장구를 친다. “사실 누가 보면 ‘저게 왜 재미있나?’싶겠지. 나도 예전엔 ‘고3이면 당연히 하루 종일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했거든. ”
세상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여자, 남자, 그리고 고3. 공부에 치이고 억눌리는 시기이기에, 자신이 하고픈 것들을 희생하는 시기이기에 고3은 특별하다. 이 시기를 거치면, 우리는 인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까? 이제 그 힘겨운 싸움도 얼마 남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도전, 대학 입시라는 큰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우리반 친구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친구들아, 힘내!
김민정/고척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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