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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12 18:01 수정 : 2006.11.12 18:03

논리로 배우는 수학/

‘어학 연수’라는 것이 있다. 대부분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현지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뜻한다. ‘수학 연수’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것은 특별히 수학을 배우기 위해 갈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수학 나라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부족한 수학 공부를 위해 몇 달 또는 몇 년 가서 공부하면 그 어렵다는 수학도 몸에 배고 입에 붙어서 쉽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요즘 각 지자체에서 유행처럼 만들고 있는 ‘영어 마을’에 버금가는 ‘수학 마을’이라도 만들고 싶다.

사실 한국민속촌에 자그마한 기업이 자금을 대서 ‘수학체험관’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을 내가 소속된 사단법인 수학사랑 선생님들이 도와주었는데, 도와준 뜻은 그나마 학생들이 여기 가면 수학 연수가 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수학체험’이라는 말이 보통 명사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수학 연수가 (있다면) 어학 연수에 견줘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지자체나 다른 기업의 관심을 살 수가 없어 그 시설과 운영 면에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영어와 수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도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 영어는 태어나면서 저절로 부모로부터 익히는 언어, 즉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배워야 한다. 수학 교육의 목적은 논리적 사고력을 익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시작점에 있는 것이 수학에서 쓰이는 각종 용어들이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인간으로서의 논리적 사고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익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학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그 기본 언어가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영어라는 언어와 수학에서 쓰이는 용어는 공통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영어와 수학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1학년까지는 배우는 수학의 용어의 정의(定意)를 ‘약속’ 또는 ‘뜻’이라 하고, ‘정의’라는 말은 중학교 2학년 가을부터 사용하게 된다. 영어에서 쓰이는 용어, 즉 단어나 숙어 등은 그저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학에서 쓰이는 용어는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그런 용어를 사용하게 된 필연적인 이유들이 있다. 그런데 많은 수학 교사들이 수학의 용어의 정의를 영어처럼 막연하게 외우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나는 수학의 용어의 정의가 그냥 암기만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학생들도 수학을 공부할 때 이 용어의 정의가 가진 의미를 곰곰 되새겨 보는 것이 수학을 이해는 하나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익힌 이후에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것처럼 수학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다. 아니 영어는 외국에 가서 있으면 그 실력이 늘어나지만, 수학은 나가서 실력을 늘릴 나라가 없다. 그러나 영어 실력을 늘리는 방법이 어디 꼭 외국에 나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 영어를 관심 있게 사용하고 영어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영자 신문도 읽고, 지자체에 있는 영어 마을에도 가보고 하면 영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듯이 수학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수학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수학에 관계된 신문은 없으나 수학을 재미있게 풀어쓴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 그것들을 읽어보고, 수학체험관 같은 곳을 가보고 하면 수학 실력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학에 대한 생각이다. 시시각각 순간순간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면서 도형을 생각하고, 신문에 난 수치를 보면서 계산을 해보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이 끝나면 어김없이 역대 1차전을 이긴 팀이 우승할 확률이 몇 %인가를 말하는 텔레비전 해설자를 보면서 경우의 수에서 배운 수형도를 그려보는 등의 생각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수학을 익히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 정도면 나중에 훌륭한 수학자가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학의 용어를 어떻게 익힐 것인가?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 처음 배우는 수학 용어는 ‘집합’이라는 말이다. ‘집합’은 최근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우리나라 중학교 1학년 첫 시간에 배우는 용어다. 그 뜻은 ‘어떤 기준에 의하여 그 대상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의 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막연하게 그 다음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예를 통하여 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집합이라는 용어를 인정한 다음 할 일이다. 물론 교과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제약점이 있다. 그러나 집합을 가르치는 교사나 공부하는 학생은 교과서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 집합을 그렇게 정의(定意) 했을까를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고민하는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하면, 반대되는 경우를 생각함으로써 그렇게 정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추측하는 것이다. 기준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상을 분명히 알 수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고민은 집합의 정의를 되씹어 보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기준이 없다면 그 원소나 한계를 정할 때 막연해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대상을 분명히 알 수 없다면 각자의 추측으로 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곧 각 사람마다 정한 기준이 다르고 대상 또한 불분명해서 집합에 포함된 원소가 서로 다르게 되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논의할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어느 교과서나 어떤 문제집을 보아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을 통해서 집합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한 이후에야 집합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일이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또 수학은 수학 시간에만 하는 괴상한 교과가 아니라 곧 내 생활이요, 인간의 논리적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중요한 과목임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최수일/서울 용산고 교사, 사단법인 수학사랑 회장 choi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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