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사 공장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맨 오른쪽이 전태일) ⓒ전태일기념사업회
|
전태일 평전을 통해 바라본 전태일
한 노동자가 있었다. 노동자가 하루 14시간 이상 일을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 현실을 바꾸기 위해 동료 노동자들에게 설문지를 뿌려 실태를 파악하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청까지 달려간 사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난한 노동자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자, 마지막 수단으로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내던진 사람.
그가 바로 전태일이다. 자기만을 위해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전태일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았다. 해마다 노동자들은 전태일을 기념하기 노동자대회를 연다. 올해 역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총파업 투쟁 승리’라는 이름으로 12일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전태일 45년 분단 이후에 어려웠던 한국 경제는 60, 70, 80년대를 거쳐 눈부신 경제 성장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경제성장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경제성장 속에 하루 당시 커피 한잔 값인 50원의 일당에 14-15시간을 일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감추어져 있다. 전태일의 현실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환풍기 시설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봉제공장에서, 폐렴에 걸린 14-15살 여공들과 함께 일을 했다. 하지만 그는 열악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바쳤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다. 전태일의 첫 의문은 왜 회사의 사장 보다 더 많이 일을 하는데, 노동자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하는 것이었다. “왜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이 의문속에는 노동자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함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전태일은 의문을 넘어 현실을 바꾸기 위한 싸움에 나섰다.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법은 인간의 노동시간을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이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법만 제대로 지키더라도 당시 하루에 14시간, 1주일에 98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보내야만 했던 노동자의 삶은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이후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투쟁에 나선다. 동료 재단사들과 바보회와 삼동 친목회를 조직하면서 현실을 바꾸려고 했다. 노동청과 시청에 달려가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려내고, 바꿔달라고 호소를 했다. 시청과 노동청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여도 포기하지 않았다. 시청과 노동청에선 전태일의 진정서를 접수하고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전태일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을 선택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가 사랑했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려내고 개선하고자 한 것이다.
|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쓴 편지.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시청과 노동청을 통해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전태일기념사업회
|
전태일에 기억해야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끝없는 현실 개선 의지' 우리 현실은 개인을 위한 삶을 살기에 벅차다. 청소년의 현실만 봐도 그렇다. 내신등급제의 현실 속에서 남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아야 내가 살 수 있다. 시험 때 때로는 친구의 교과서를 찢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전태일은 달랐다. 그의 삶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언젠가 전태일은 배고픈 여공들을 위해 자신의 차비를 가지고 풀빵을 사주었다. 대신 그는 차비가 없어 집에 걸어갔다. 동료 여공들이 해야 할 일을 혼자 남아 하다가 사장한테 혼나는 일도 있었다. 전태일의 삶은 자기 혼자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에 나섰지만, 아직도 값싼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또한 비정규직제도의 도입을 통해 언제 정리해고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기념하는 노동자대회를 여는 것은 전태일 속에 ‘현실을 바꾸고자하는 끝없는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동료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일을 도와주면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될 줄 알았던 전태일. 하지만 그것만으로 바뀌지 않자 바보회를 조직해서 바꾸려고 했던 전태일. 그것도 힘들자 자신의 눈을 장기 기증한 것으로 돈을 받아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를 설립하고자 했던 전태일. 시청에, 노동청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답하지 않자,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으로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전태일. 이러한 전태일의 삶은 노동자들에게, 특히 현재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싸움에 나선 사람들의 가슴속에 전태일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혜규 기자 66950@hanmail.net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