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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14 15:37 수정 : 2006.11.14 15:37

뿌리를 보지 못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거대한 관문으로 힘겹게 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아이들의 책상에 찹쌀떡과 초콜릿 등이 놓이면서 아이들의 눈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3학년들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무겁고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야속한 초침은 소리도 요란하게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갈 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변함없이 나타나는 학교 풍경이다.

“이제 실감나네요. 정말 아니었거든요. 걱정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험 날 늦으면 어떻게 해요? 문제를 시간 안에 다 못 풀면 어떻게 해요.”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데 효진이가 따라 나왔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그냥 평소처럼 풀면 돼.”

녀석은 이내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큰 시험 앞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들의 소중한 10대들은 이렇게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한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않든, 어린 시절부터 준비해온 모든 것을 한 번에 쏟아 붓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냉정한 사회는 우리들의 10대들이 맨 몸으로 이 시험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도 갈수록 더 힘든 방법을 찾아내는 것 같다.

올해 고3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고 나가면 그 뒤를 이어 새 아이들로 시험장은 채워진다. 그런데 지금 2학년 아이들은 수능과 내신의 변화와 논술 시험의 확대로 스스로 ‘죽음의 트라이앵글 세대’라고 하고 있다. 시험 앞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레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우리 아이들의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창의적으로 뻗어나가기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 논술을 해야 하는 거예요? 한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2학년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논술이다. 애당초 다양한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지만 다른 장점은 모두 사라지고 다만 입시의 한 유형으로만 남아 아이들을 옭죄고 있다.

“다음이 우리 차례예요.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2학년 아이들의 얼굴에도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 악순환을 풀어나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계속해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이 트라이앵글 속에 몰아넣고는 적응하지 못한다고 야단치고, 경쟁에 뒤처지면 그대로 내동댕이쳐야 하는가.

‘희망이 있는 한 농부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서, 그 열매가 맛이 없다고 해서 나무에 물주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뿌리가 살아있는 한 가능성은 있으니까요.’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농부는 뿌리가 살아있는 한 가능성을 찾으며 물주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들 교사는 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에도 열매 맺지 못한다고, 꽃이 밉다고, 벌레 먹었다고 지레 내동댕이쳤던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우리 아이들의 뿌리를 보지 못하고 그 열매만 보기위해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거대한 관문 앞에 서서 그 문으로 힘겹게 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실망하고 좌절하며 자신의 귀한 생명을 상처 낼지 걱정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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