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출품ㆍ위작등 부정행위 속수무책
내년 `치맛바람으로 더욱 성행' 우려
서울시교육청 연구관 김모(51)씨가 저지른 대입 특기자 부정입학 주선 사건은 현행 수시모집 제도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냄에 따라 교육 당국 및 대학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입 특차전형 지원자격을 부여하는 각종 경진대회가 난립하고 있으나 선발 및 심사 과정이 허술하고 불투명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설명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등급제로 전환돼 변별력이 더욱 약화되는 2008학년도 대입전형부터는 특차 지원이나 평가점수 상승을 위해 이런 허점을 이용하려는 사례가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부정입학 주선 수법 = 과학 담당인 김씨는 본인이 고안한 출품작을 아들ㆍ딸과 다른 학부모 자녀의 이름으로 대리출품토록 함으로써 이들이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와 과학전람회에서 입상토록 했다.
발명대회 입상 경력이 있는 김씨는 `생이가래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 조사', `소방훈련용 물소화기 및 빗물정화기', `저수지 주변의 논밭이 호수에 미치는 영향 연구', `세정제 소비를 90% 줄인 경제적인 양변기' 등 심사위원들의 구미에 맞을 만한 출품작을 잇따라 제작해 부정 입상토록 했다.
서울 강남에서 15년 간 초등학교 교사(과학 담당)로 근무했던 김씨는 2003, 2004년 서울시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어 심사 경향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김씨는 당시 서울시교육감에게 788만원의 금품을 주고 인사청탁을 했으며, 실제로 김씨는 2004년 본인 희망대로 경진대회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지원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 허술한 심사ㆍ수상자 양산 = 특기자전형 지원 자격이라는 막대한 특혜가 주어지는 경진대회의 심사 과정이 허술하다는 사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났다. 미리 제출한 작품 설명서를 읽어 본 뒤 심사 당일 출품자를 2∼3분 간 면접하는 것으로 심사가 끝나기 때문에 위작(僞作), 모작(模作), 대리출품 등 부정을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교별 대회가 거의 실시되지 않고 특정 학생이 교사와 함께 곧바로 출품하는 방식으로 경진대회가 진행되는 점도 선발 과정이 불투명한 이유 중 하나다. 이런 경진대회가 난립해 특기자 지원 자격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도 부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특기자 지원 자격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2개 대회만 따져도 매년 486명 배출되며 다른 부처나 사설단체 등이 주최하는 행사까지 합치면 수천명에 이른다. 대학들의 특기자 심사 과정이 엄격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이번에 적발된 학생들이 지원했던 연세대의 경우 수상경력 60%,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15%, 면접 25%로 특기자를 선발하지만 특기적성을 평가하거나 별도로 검증하기 위한 별도 절차는 없으며 이는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 치맛바람 우려 = 내년에 실시되는 2008학년도 대입전형부터는 이런 허점을 악용해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더욱 드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금까지 점수제였던 수능시험이 등급제로 전환되면서 변별력이 더욱 떨어질 경우 경진대회 입상 경력 등에 따른 평가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특기자 전형 지원은 물론이고 정시모집에 지원하는 경우에도 교과외 활동 등이 실린 학생부 기록이 종합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대회 입상 경력은 대입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쉬운 수능'이 이런 부정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수년 간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의 합격자 수능 평균이 100점 만점 에 90점을 넘어서고 의대 등 일부 인기학과는 95∼98점에 이를 정도로 수능이 쉽게 출제돼왔다. 따라서 "어차피 수능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으니 다른 수험생보다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경진대회에 입상해야 한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과열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학교에서 경진대회 준비반이 운영되고 수천만∼수억원을 받고 이를 준비토록 해 주는 학원, 과외교사, 브로커 등도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경찰은 전했다. 대전의 모 사립고 교사는 "올해 들어 학교당국이 경진대회 등 각종 특기자 전형 대비를 강조하고 있어 발명반에 등록한 학생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입학업무 담당자는 "2008학년도부터는 정시와 수시를 가릴 것 없이 경진대회 과열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수학ㆍ과학올림피아드 등 공신력 높은 소수 대회만 평가에 반영하고 내신ㆍ수능 최저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화섭 기자 solatido@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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