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와 국기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근대 국가 성립 과정의 일부였다. 근대 국가가 이미 성립된 오늘날까지 애국조회가 우리의 일상에 있는 현실을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겨레> 자료사진
|
삶, 사유, 논술 / ‘운동장 조회’를 하는 시간.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며 대이동을 한다. 학교의 주요 행사가 있을 때, 학생들 전체가 한 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시간이다. 신입생과 재학생이 만나 인사하는 자리가 되기도 하고, 스승의 날 기념 행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학생회장 선거가 있을 때에는 한 판 유세가 펼쳐지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식이 진행되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그 날의 주제에 따라 보태지는 내용이 다를 뿐, 그 순서는 거의 같다. ‘국기에 대한 맹세-애국가-시상식-교장 선생님 말씀-교가’는 전체 조회의 기본 축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리라’는 맹세로 시작해서, 다 함께 교가를 부르며 행사를 마친다. 우수 학생에 대한 시상식이 자리를 빛내고, 교장 선생님 말씀에서 정점에 이른다. 어느 학교건, 어떤 날이건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다. 조회의 기본 목표는 바로 ‘나라 사랑’과 ‘학교 사랑’에 있다. 지금과 같은 의례가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새로운 의례의 첫 시작은 1898년 독립협회의 주관으로 열린 ‘대한제국 1주년 기념식’에서 비롯됐다. 대한제국의 독립성을 알리기 위해 단상에는 내빈과 외빈을 모시고, 회원들은 국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불렀다. 장엄한 음악과 연설이 있은 후, 황제를 향한 만세 삼창이 이어졌다. 밖으로는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보여주고, 안으로는 새로운 근대 국가의 국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근대 국가가 되는 것, 국가로서 정체성과 주권을 갖는 것, 이것은 어느 나라든지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필수였다. 그 과정에서 애국가와 국기는 조국에 대한 충성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물들이는 상징이었다. 수많은 인종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경우, 통일되면서 만들어진 성조기와 대통령에 대한 경례는 중요한 의례가 되었다. 독일의 나치도 언제 어느 곳에서나 히틀러와 나치당에 대한 충성스런 경례로 순간의 마음을 다듬었다. 일본의 가미카제도 욱일승천기를 휘감고 위대한 천황을 위해 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국가는 상징물을 통해 분열을 단결로 만들고, 집단의 이념과 방향을 끌고가는 응집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서 근대 국가의 시민들은 민족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갔다. 어느 시대나 역사의 새로운 흐름은 철학의 응답으로 더 강해진다. 독일의 경우, 18세기까지도 군소 제후국들로 분열돼 있다가 뒤늦게 통일국가 건설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철학자 헤겔은 국가야말로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최후의 완성에 이르는 이상적 공동체라 주장했다. 그는 ‘국가 안에서’ 개인과 조직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고 고차원의 삶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하였다. 헤겔 덕분에 ‘국가’는 거대하고 고상한 이념의 대명사로 승격됐다.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독일식 민족주의에는 바로 철학의 뒷심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국가주의적 이념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위협요소로 작용했다.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국가의 판단 앞에서, 개인은 믿고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 존재로 위치지워질 수밖에 없다. 개인은 국가의 운명과 함께 삶을 걱정해야 한다.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도 ‘조국에게 감사’하고, 살림하는 가정 주부도 다른 나라의 주부와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질서를 위해 노동자나 소수자의 인권은 잠시 기다려야 할 부차적 요소가 된다. 개인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믿음의 역사적 뿌리인 셈이다.
그런데 조국 독립도 근대 국가도 해결된 지금, 여전히 ‘애국조회’는 우리의 일상에 있다. 게다가 군대의 사열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모두가 운동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줄을 맞추어 서고,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뒤 최고 책임자의 훈화를 듣는다. 줄이 비뚤어졌거나 똑바로 서있지 않거나 소란스러우면 정신의 해이함으로 규정된다. 높은 단상에서 진행되는 시상식은 상을 받는 사람의 위신을 세워주고, 주는 사람의 권위를 더욱 높여준다. 이것이 개개인을 동원과 훈련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 까닭이다.
|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