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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8 16:32 수정 : 2006.11.28 16:32

청소년인권활동가 이슬양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청소년 인권활동가 이슬(17)양

청소년인권운동가 이슬(17)양이 인권 운동의 길에 들어선 것은 획일화 된 우리 사회에 대한 반발과 함께 사람에 대한 사랑, 두 가지에 있다.

기자가 이슬양을 처음 본 것은 지난 8월. 그때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교육부 앞에서 ‘학생인권 개선을 위해 전국 행진을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취재 중이던 기자는 전국 행진을 앞둔 그와 인터뷰를 했고, 그는 쑥스러운 목소리로 “우리의 행진을 지켜본 학생들이 자신의 인권을 높이는 활동에 나서길 바란다”며 각오를 밝혔다.

그러다 이슬양의 이름을 또 듣게 된 것은 지난 9월이었다. 당시 그는 ‘자이툰 연내 완전 철군을 위한 9.23 반전행동’ 집회에 참석해 청중 앞에서 발언을 했다. 당시 한 신문을 통해 이슬양의 발언을 접했는데, 그는 “자기 이익이 다른 이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마을 한복판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아이들이 지뢰를 밟아 죽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 때문에 자기 혼자의 이익을 찾기에도 바쁜 학생들. 하지만 이슬양은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을 그 시간에 청소년인권 개선과 우리 사회 인권 개선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슬양은 어떻게 해서 인권운동가가 됐을까?


■ 인권운동에 눈 뜬 계기 - 이슬양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 그는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 자원활동가이며,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활동가이자, 전쟁반대 청소년들의 한 구성원이다. 또한 고1이던 작년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청소년이며, 올해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시험까지 본 수험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그룹 ‘신화’를 보기 위해 공개방송을 찾을 정도로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이슬양이 이렇게 바뀐 것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그의 표현대로 하면 ‘획일화된 학교’가 싫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아침 8시 30분에 등교해 저녁 9시까지 야자까지 되풀이되는 시간은 그렇다치고,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업내용이었다.

답이 있는 국어시간. 그리고 싶은 것을 정작 그리지 못하는 미술시간, 짜여진 각본처럼 시간표대로 살고 있는 삶은 그가 ‘친구 때문에 다니는 학교’를 떠나는 결정적 이유였다. 8월부터 시작한 고민은 그해 11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야 끝났다. 이슬양은 학교를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후엔 당연히 ‘앞으로 무엇을 할까’에 고민이 모아졌다. 그러던 차에 집으로 오는 각종 사회관련 자료를 봤다. 사회단체에 후원하는 아버지 덕분에 환경운동단체의 자료를 비롯해 집으로 배달되는 여러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여러 자료 중에 가장 눈에 갔던 것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했던 인권 하루 소식. 그는 당시 뉴스에서 접하지 못한 우리 사회 이면을 알게 되었고, 바로 인권운동사랑방에 달려가 자원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자료실에서 자료를 정리하면서, 그는 인권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이슬양은 자료 정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사실을 꼽았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의문사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진 레이온 직업병’이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지난 88년 당시 이황화탄소 허용기준치(10ppm)의 2.6배, 유화수소는 허준기준치의 1.3배가 넘는 등 유해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원진 레이온 직업병' 에 걸리면 심한 경우 사망까지 이르는 등 당시 한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주소를 고발했다.

■ 학생인권운동에서 사회인권운동을 거쳐 다시 청소년운동으로 오기까지 -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이슬양은 지난 2월 청소년인권운동 워크샵을 계기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 참여했다.

이후 이슬양은 ‘두발규제, 강제야자 폐지’ 등 학생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에 힘을 쏟았다. 청소년들과 함께 대전, 대구 등 전국 행진을 진행했으며, 각종 회의에 참석해 네트워크의 방향을 계획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모든 사람을 획일화 시키는 학교’에 반대했던 이슬양으로선 학생인권운동에 나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학교에서의 경험과 두발규제 때문에 눈물을 흘리던 친구들의 모습은 학교현실을 바꿔야겠다는 의지를 높였다.

이슬양이 지난 8월 ‘학생인권 개선을 위한 전국행진 개최’ 기자회견에서 입시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청소년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사회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대추리 주민들을 내쫓고 미군기지를 짓고 있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농민을 고통에 빠트리고 있는 한미FTA에도 관심을 가졌다. 얼마 전 22일에 있었던 한미FTA 반대 민중총궐기에도 참여했다.

이슬양은 자신이 사회문제를 관심 갖게 된 것을 ‘인권 개념의 확장’이라고 표현했다. 학생인권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이슬양은 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대추리에선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인권을 보았고, 한미FTA에선 쌀개방 때문에 피해를 보는 농민들의 인권을 보았다. 또한 이라크에선 전쟁 때문에 고통 받는 어린 아이들의 인권을 보았다. 이슬양에게 인권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이었다.

이슬양은 이런 자신의 변화에 대해 “청소년들도 두발자유 등 자신들의 인권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그런 이슬양은 다시 청소년인권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탈학교 청소년의 인권’, 다시 자기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온 것이다. “오늘도 길거리에서 핸드폰 파는 분이 몇 살이라고 물어서, 17살이라고 대답하니 학교에 안가냐고 묻더라구요.” 이슬양은 지금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싸우고 싶다.

그가 다시 청소년인권운동에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두발자유, 강제야자 철폐와 같이 학생들의 인권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슬양은 학생들의 인권을 이야기했던 최순영 의원의 ‘학생인권법안’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지금 이슬양은 탈학교청소년운동과 같이 청소년운동의 분야를 넓히고 싶다.

■ 지금 하고 있는 고민 - 현재 학교에 다녔으면 고2의 나이지만, 지금 그는 탈학교 청소년으로 고교 졸업장을 따고, 수능시험까지 봤다.

막상 수능시험까지 치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얼마 전 만난 한 사회활동가가 “대학갈 것이냐. 대학 안가도 살 수 있는 법이 있다”고 말했던 것.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슬양에겐 ‘대학’이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학교에 나와서도 입시제도 안에서 살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한 것. “더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원하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인권운동에 필요한 것을 배우고 싶은데, 사회를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슬양은 ‘심리학’에 대해서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이랑 이야기할 때 편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이야기 속에 해답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심리학에 관심이 간다.

이슬양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가기 싫었던 학교를 마지막까지 다니게 했던 것도 친구였다. 또한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앞으로 뭐할꺼냐”고 걱정하던 친구들이 소중하기만 하다. “내가 살면서 고민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재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평가 - 그는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가장 큰 장점으로 청소년들끼리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어른들의 경우 사는 지역에 따라, 회사에 따라 많이 다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면 서울에 살던 부산에 살던 입시, 두발규제 등 똑같은 것을 고민한다. “누구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요.” 그가 꼽는 청소년인권운동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반대로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청소년인권운동가들이 청소년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지금 학교에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두발자유운동 등 자발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개인의 용기로 진행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슬양은 그 이유로 일반 학생들이 청소년인권운동가들을 잘 모르는 현실을 꼽았다.

“청소년인권운동가들이 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각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자기 용기만을 가지고 운동하고 있어요. 캠페인을 해서 인권운동가들을 알리는 등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에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정혜규 기자 66950@hanmail.net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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