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03 16:20
수정 : 2006.12.03 16:20
싫다고 할걸 그랬다 /
모든 사건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수두를 앓는 바람에 절친한 친구 사비나와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도, 그 틈에 사비나가 깍쟁이 화니와 단짝이 된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다. 사비나가 소중하게 여기는 워크맨을 주운 뒤 미처 돌려주지 못한 것, 하필 그 장면을 학급의 ‘왕따’인 카린이 목격한 것도 그렇다.
그러나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에는,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라도 때론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포함돼 있다. 주인공 노라는 “싫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지만, 사랑하는 친구 사비나를 영영 잃게 될까봐, 자신도 카린처럼 놀림을 받을까봐, 또래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될까봐 겁이나 한 번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댓가는 우정을 나눌 소중한 친구를 잃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노라에게는 해야 할 일을 외면함으로써 다른 이의 존재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자신과 직면해야 하는 가혹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스웨덴 작가 아니카 토어는 책 말미에 덧붙인 인터뷰에서 “십대 여자 아이들의 관계는 전혀 목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우정을 쟁취하고,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노라와 친구들이 바라는 것은 ‘유일하고 한결같은 우정’이며, 또한 ‘우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다. 마음을 주고 받는 일, 관계 맺기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어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숙제라는 사실을 노라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다시금 카린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비겁한 자신과 기꺼이 마주하는 노라의 용기는 어른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하다.
작가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토대로 영화로도 제작된 이 소설은, 그 곳이 스웨덴이든 미국(할리우드)이든 한국이든 십대들에겐 또래 친구들이 세계의 전부이며 이 시기 친구들과 겪은 일이 생각보다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 친구들 때문에 밤 잠을 설치는 십대들을 위하여, 그리고 십대 시절 우정과 소외 사이에서 방황한 기억이 있는 어른들을 위하여. 아니카 토어 글, 파랑새/8천원.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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