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03 16:24
수정 : 2006.12.03 16:29
솔뫼골 밤꽃 도둑 /
가슴 아픈 사연이 없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사는 집들이 적지 않다. 재우네는 겉으로도 고통이 드러나는 가족이다. 아버지의 사업은 실패하고, 재우는 교통사고를 당해 목발을 짚고 다닌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로 내려온다.
새로 정착한 시골에도 아픔과 고통은 곳곳에 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이산가족. 전쟁과 분단이라는 시대가 안겨준 상처는 할아버지를 평생 괴롭힌다. 선머슴 같은 말실이의 아버지는 우리 것을 지키려 전통 방식으로 옹기 굽는 일을 묵묵히 해왔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급감하자, 그는 옹기를 깨버리고 읍내 단무지 공장에서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솔뫼골 분교가 폐쇄된 뒤 새로 다니게 된 당산골 학교에서 텃새를 부리는 애들로부터 재우와 두전이 등 솔뫼골 아이들을 돌봐주는 말실이도 겉보기와 달리 쓰라린 아픔을 담고 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것이다. 어눌하지만 순수하기 짝이 없는 두전이는 원래 반에서 1등을 독차지하던 똑똑이. 하지만 마루에 놓여 있던 농약을 음료수인 줄 알고 마셨다가 그만 장애아가 되고 만다.
뭔가 부족하고 어딘가 아프고, 어딘가 정상이 아닌 사람들만을 모아 놓은 것 같아, 모든 게 갖춰진 집에서만 사는 요즘 아이들로서는 동화를 읽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구걸을 하는 장애인들을 보면 괜히 멀리 돌아서 피해가는 심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픔과 고통은 세상 어디엔가는 반드시 있는 게 세상사이기도 하다. 또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으로는 불치의 병을 갖고 있거나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아픔 자체에 대해선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할 듯 싶다. 대신 그 상처들을 잘 보듬어 이겨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을 껴안는 일이기도 하다. 동화는 온갖 상처를 이겨내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재우와 말실이, 두전이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려낸다. 솔뫼골 애들을 괴롭히던 준호조차 이사를 가면서 밤골 창고 벽에 솔뫼골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을 보여주는 편지를 남겨, 화해의 결말로 유도한다. 또 목발을 뺏어간 준호 덕분에 재우는 혼자 걷는 데 성공하고, 재우 아버지는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가족을 버리고 혼자 떠났다가 결국은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와 할아버지의 과수원을 경영한다. 다만 외다리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편견에 못버티고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 밤골을 떠나고 만다.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밤꽃 도둑은 애초부터 없었다. 하지만 솔뫼골 삼총사 재우, 말실이, 두전이는 밤꽃 도둑을 잡으러 다니면서 잊지 못할 기쁜 추억도 만들고, 각자의 아픔도 자연스럽게 극복한다. 손에 손을 맞잡고 가슴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밤꽃 도둑을 요즘은 어디에 가서 찾을 수 있을까? 손호경 글·그림. 시소/85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