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3 14:36
수정 : 2005.03.13 14:36
도대체 그동안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이호백/재미마주
15년쯤 전 이야기다. 딸애가 어찌나 조르는지, 어느 날 길거리 노점에서 하얀 토끼하고 까만 토끼를 사 왔다. 베란다에다 토끼집을 놓고 길렀는데, 틈만 나면 창문을 넘어 마루로 들어와서 깡충깡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놀았다. 똥오줌을 치우기는 귀찮아도 참 귀여웠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고, 귀를 쫑긋거리고, 구석에서 콜콜 자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그 말썽꾸러기 귀여운 우리 집 토끼, 하얀 토끼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식구들이 집을 비운 밤에 베란다 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하얀 토끼를 보니 우리 집 마루에서 돌아다니던 그 토끼가 자꾸 눈에 밟힌다. 요란한 색으로 뒤범벅한 그림책이 판치는 세상에 어쩜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색과 선으로 우리들 마음을 끌어당기는 편안한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까? 요리조리 다니며 떨어뜨려 놓은 까만 똥을 따라가면서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방 안을 마음껏 어질러 놓고 콜콜 자는 모습을 보노라니 나까지도 느긋한 해방감에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하품이 난다.
이 책 주인공인 하얀 토끼는 사실 토끼가 아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냉장고를 열고 평소에 먹고 싶었던 것을 꺼내서 마음껏 먹어 보고, 보고 싶었던 비디오도 실컷 보고, 과자를 먹으면서 텔레비전도 혼자 독차지해서 보고, 엄마 화장품을 꺼내서 얼굴이나 입술에 발라 보기도 하고, 헐렁헐렁한 아빠 옷도 입어 보고, 방안에서 타지 못하게 하는 롤러 블레이드도 신나게 타 보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의자 모퉁이에 머리를 쑤셔 박고 세상 모르게 콜콜 자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이 책에서 마음껏 놀고 있는 토끼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또는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책 속에 토끼하고 같이 신나게 놀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베란다 집으로 돌아간 토끼를 보면서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해 질 것이다.
이주영/서울 송파초등학교 교사
jyl0301@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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