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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통해 어떤 것의 의미와 가치는 오직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해서만 생겨난다고 말한다. <생텍쥐페리-지상의 어린왕자>(시공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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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여우에게서 그 대답을 듣는다.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한마디로 서로 길들이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수많은 여우 가운데 오직 한 여우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정성 들여 쏟은 시간이야”라고도 한다. 곧, 여우가 말하는 ‘길들이기’란 다름 아닌 ‘관계를 맺기’, 또는 ‘사랑하기’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것이 소중한 것은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을 때뿐이라는 것, 곧 어떤 것의 의미와 가치는 오직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해서만 생겨난다는 것이다. 같은 말을 유태인 랍비이자 철학자였던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했다. 그는 모든 관계를 ‘나―그것’의 관계와 ‘나―너’의 관계로 구분했다. ‘나―그것’의 관계란 1인칭과 3인칭만의 관계를 말한다. 모든 3인칭 대상들은 나에게 다만 파악될 뿐 응답하지도 않고 나를 배려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그’는, 그리고 ‘그’에게 ‘나’는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이나 같다. 이런 세계는 ‘사물들의 세계’이자 ‘무의미의 세계’, 곧 사막이다. 하지만 만일 1인칭인 ‘나’가 3인칭인 ‘그’와 어떤 관계를 맺을 때, 드디어 ‘너’라는 2인칭이 기적처럼 탄생한다. 또한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 ‘너’라고 부르는 관계, 다시 말해 ‘나―너’의 관계가 생겨난다. 그리고 비로소 서로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응답하며 배려하게 된다. 그 결과 세상은 ‘사물들의 세계’에서 ‘의미와 가치의 세계’로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2인칭이란 ‘관계의 인칭’이자, 사물의 세계를 의미와 가치의 세계로 바꾸는 ‘기적의 인칭’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왕궁처럼 호화로운 집 안에 홀로 있다고 하자. 그는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가 평생을 그렇게 홀로 지낸다면 그의 존재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집 안에 놓인 탁자나 의자, 책상, 옷장, 거울 등과 같이 단지 하나의 존재물일 뿐, 왕이라는 그의 존재의 의미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그를 왕으로 섬기는 신하 앞에서만 그는 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있어 비로소 남편이 있는 것이고, 아이가 있어 비로소 부모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말을 부버는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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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자유저술가,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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