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3 15:06
수정 : 2005.03.13 15:06
[동양신화속으로]
탁록의 큰 싸움에서 치우군은 수적으로는 황제군보다 적었지만 매우 용맹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처음에 치우의 도깨비 군단이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달려들자 황제군은 혼이 빠져서 변변히 싸움도 못하고 뒤로 밀리었다. 황제는 이에 신기한 북을 만들어 대항하였다. 황제는 동해의 섬에 사는 기(夔)라는 괴물의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고 뇌택(澤)이라는 호수 근처에 사는 뇌수(獸)라는 괴물의 뼈로 북채를 만들었다. 이 두 괴물은 모두 천둥소리를 내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이 북을 한 번 두드리자 그 엄청난 소리에 치우의 도깨비 군단은 맥을 못추고 물러갔다. 그러자 치우는 술법을 부려 짙은 안개를 피워 올렸다. 안개는 사흘 동안이나 황제군을 포위하였다. 황제군이 아무것도 안 보여 혼란에 휩싸였을 때 치우군이 습격하여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이때 황제의 신하 풍후(風后)가 지남거(指南)라는 수레를 만들어냈다. 지남거는 수레 앞 인형의 손가락이 항상 남쪽을 가리키도록 설계된 수레였다. 황제군은 이 수레 덕택에 방향을 짐작하고 간신히 안개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초반의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고자 황제는 한 가지 계책을 마련하였다. 황제는 신하 응룡(應龍)을 시켜 천상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모아 두게 하였다. 응룡은 날개 돋친 용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황제는 천상의 물을 치우군에게 내리부어 모두 쓸어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책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치우군에는 비의 신인 우사와 바람의 신인 풍백이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신은 응룡이 천상의 물을 모아 둔 것을 탐지하고 도리어 그 물을 황제군 머리 위로 쏟아 부었다. 황제군은 난데없는 물난리를 당해 병사들이 떠내려가고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이제 황제군은 완전히 패배할 것처럼 보였다. 황제는 마지막 카드로 자신의 딸이자 가뭄의 신인 발(魃)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발은 대머리에 푸른 옷을 입은 여신으로 불덩어리가 몸에 가득한 신이었다. 가뭄의 신 발이 지상에 내려오자 그 뜨거운 열기로 물난리는 곧 진정되었다. 황제는 이에 다시 군대를 정돈하여 치우군에게 총공세를 펼쳤다. 황제군은 원래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으므로 치우군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용감하게 싸웠던 치우의 형제들과 거인 과보족들은 하나하나 전사하고 치우도 마지막까지 싸우다 황제군의 맹장 응룡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황제는 곧 치우의 목을 베어 몸과 목을 멀리 떨어진 지역에 따로 따로 묻도록 했다고 한다. 싸움꾼 치우가 다시 살아서 복수를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이렇게 해서 대륙의 패권을 두고 겨루었던 치우와 황제의 큰 싸움은 황제의 승리로 돌아갔다. 동방 구려족을 비롯한 염제 계통의 신족들은 죽거나 변방으로 쫓겨 갔고 황제는 이 전쟁을 계기로 대륙을 지배하는 최고신으로서의 지위를 확실히 굳히게 되었다.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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