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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3 16:20 수정 : 2005.03.13 16:20

[글쓰기교실]

위풍당당한 나

노미영/광주 정광고 3학년

예전에 나는 고개를 반듯이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신 있는 말투로 당당할 수 있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배워 왔고, 얄팍한 선입견이나 의식들이 종종 나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들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능력부족이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단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내가 좋아한다고 설쳤던 모든 것들도 그저 어정쩡하고, 잘하지도 못하면서 하고 싶다고 일을 벌였으니, 모두 날 무기력하고 대책 없는 인간으로 봤을 테지. 한숨만 나온다.

그림 좀 그린다고 시내에 있는 학원에서 상담을 했다. “가고 싶은 대학이 어디냐?” “○○대요.” “못 가.” 단호한 한 마디, 서울대라고 말했으면 한 대 칠 분위기였다. 처참해진 나의 신세. ‘아아, 나도 잘 알고 있다. 이 놈의 성적으로는 꿈도 못 꾸겠지. 철없이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내가 웃겼겠지. 근데 가고 싶은 대학이라고 물었잖아. 갈 수 있는 대학이 아니라. 그럼 내가 지방 ㅎ대라고 말하리….’ 정말 그렇게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다. 현실이야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어디 대학 몇 등급, 학생부 몇 %…. 그래도 누구나 꿈은 꿀 수 있는 거 아닌가? 성적 안 좋고 대책 없는 인간들에게는 꿈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건지. 정말 알 수 없는 종족들의 이론이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내 스스로도 나를 어쩔 수 없는 하류 인간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점이다.


휴휴… 고개만 푹 떨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열심히 하라고 좀 더 희망적인 얘기만 해 줬더라면 나름대로 당당할 수 있었는데…. 자만이 아니라 자부심에 좀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어른들은 그 마지막 의지마저도 없애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아무튼 학교에서건 어디서 건 현실 인식 교육 한번 제대로 시킨다. 이래저래 목표가 높으면 현실 교육 한 번에 목표를 낮추고, 그것으로도 맘에 안 들면 또 현실 교육을 시켜 목표를 낮추고, 겨우 형편에 맞는 목표를 주고서야 안심이라는 듯. 어느새 꿈은 현실적인 나의 맞춤형 이상으로 자리해 버렸다. 진짜 재미없다.

아! 그래도 아직은 내가 좋다. 1등이 아닌 학교에서 환영 받을 수 없어도, 저능아 수준의 성적이 나올지라도, 대학이라는 현실이 가끔 무기력하게 만들지라도, 명문 대학에 못 가 그저 그런 인간으로 보일지라도, 원하는 대학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 날이 있더라도, 나는 하등 인간이 좋다. 아니 하등 인간이라기보다 뭔가 허술한 인간…. 1등보다는 꼴등을 이해할 수 있는 관대함이 있고, 자만보다는 겸손을 배울 수 있고, 그 자리를 지켜 내는 지루함보다 뭔가 발전할 수 있다는 스릴이 있으니까. 여전히 나의 목표는 변하지 않을 거다. 안되면 되게 하면 된다. 그렇게 내가 살고 싶은 길을 찾아가면 된다. 내가 초라해질 이유도 없고 작은 목소리로 작은 인간이 될 이유도 없다.

평>

어른들의 편견에도 기죽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자기 신념에 따라 개성 있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분명해 생동감을 주고 있다.

박안수/전남대사대부고 교사, 광주국어교사모임 회장 ansu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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