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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의 수백대 회초리 ‥ 사랑의 매냐, 학대냐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10대 아들에게 과도한 체벌을 가한 혐의로 한국인 ‘기러기 아빠’가 유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고 현지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이 12일 보도했다. 유학생 아들 일탈에 매들어
이 신문은 “한국에서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남성(45)이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쳐 캐나다 밴쿠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16)을 회초리로 수백대 때린 혐의로 체포됐다”며 “법원은 아버지에게 실형을 선고하면 자녀들의 교육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변호인 쪽 주장을 받아들여 이 남성을 보호관찰 2년에 처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또 이 남성에게 아동학대 방지단체에 2500달러를 기부하고, 어떤 형태의 자녀교육법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를 다룬 기고문을 5월까지 현지 교민신문에 내라고 명령했다. ‘한국인 아버지, 회초리에 대한 교훈을 얻다’란 제목의 이 신문 기사를 보면, 2002년 아들과 딸을 밴쿠버로 유학보낸 문제의 아버지는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부인까지 캐나다로 보낸 뒤, 수시로 밴쿠버를 찾아 자녀들의 학업을 점검해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들은 우등생으로 뽑힐 정도로 학교생활에 충실했지만, 최근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면서 학교에 자주 빠지는가 하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려 다니는 등 말썽을 부려왔다. “한국식 교육법 ” 선처 호소
이 때문에 화가 난 아버지는 1월7일 캐나다를 찾아 아들을 회초리로 100차례 때리고 귀국시키려 했으나, ‘앞으로 잘 하겠다’는 아들의 다짐을 믿고 혼자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귀국한 지 5일 만에 아들은 다시 학교에 가지 않기 시작했고, 같은 달 19일 다시 캐나다로 온 아버지는 3시간여에 걸쳐 아들에게 무려 300대의 체벌을 가했다. 그러나 이튿날 등교한 아들이 발을 질질 끄는 등 걸음걸이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학교 상담교사가 당국에 신고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현지 교민신문은 “애초 300대를 맞았다고 주장했던 아들이 아버지가 붙잡힌 뒤 20대 정도만 맞았다고 진술을 번복했지만, 현지 사법당국은 아버지가 감옥에 갈 것을 두려워해 말을 바꾼 것으로 판단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체벌 허용정도 현지서도 논란
한국인 아버지는 재판 과정에서 “캐나다에선 체벌이 불법인지 몰랐으며, 한국에선 ‘사랑의 매’가 중요한 자녀 교육 방법”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현지 교민의 말을 따서 “이 아버지는 아들을 캐나다에서 가르치기 위해 해마다 2만7천달러를 보냈다”며 “문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캐나다에서도 체벌의 허용 정도는 논란거리다. 캐나다 형법 제43조는 “교정의 목적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체벌을 허용하고 있지만, 2살 이하 유아와 12살 이상 청소년에 대해선 체벌의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또 허리띠나 자 등 ‘물건을 이용한 훈육’과 ‘주먹이나 손으로 머리를 때리는 행위’ 등도 일체 금지하고 있으며, 체벌을 가할 경우에도 ‘반드시 손바닥을 벌려서’ 머리와 얼굴 이외의 부위를 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어머니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치료를 위해 남편과 함께 귀국했으며, 아들과 딸은 캐나다에 남아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교육제일’ 기러기 가족의 비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자녀를 경쟁에서 살아남게 하겠다.’ ‘기러기 아빠’에는 자녀교육 성공이라는 결과 제일주의를 위해 소중한 가족 관계마저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결단과 모순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올해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비동거 가족경험-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양숙(48)씨는 “자녀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는 부모들이 부부가 일정한 기간 헤어져 있더라도 자녀를 위해서라면 참고 견디겠다는 결단에서 기러기 가족이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최 박사는 “자녀를 동일체로 느끼는 경우에 그것은 생산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초중고 유학생 일만여명
가족 해체등 극단적 희생 불사
자녀에 지나친 편집증 증세도
의사·변호사·교수 등 기러기 아빠 2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벌인 최 박사는 ‘자녀 동일시’ 말고도 △부모의 체면 △욕심 △허영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발적·국제적 비동거 가족’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실망과 과다한 사교육비, 학벌사회가 요구하는 왜곡된 일류의식이 날줄과 씨줄로 엮여 있다. 논문에서 기러기 아빠들은 △가족해체에 대한 우려 △그리움 △경제적 문제 등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으며, “내가 돈만 버는 기계인가”(기러기 아빠 생활 8개월), “가족이 해체될 것 같아 두렵다”(2년) 등 기간에 상관없이 대부분 현재의 가족 형태에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11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지낸 한 가장은 “기러기 가족은 무조건 반대”라고 말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2월 기준으로 국외로 유학을 간 초·중·고교생은 모두 1만498명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기러기 가족 형태의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 박사는 “가족을 위한 극단적 희생을 강요하는 비동거 가족은 한국의 교육·가족·사회 문제가 교차돼 나타난 모순 현상”이라며 “자녀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기러기 엄마들은 관심 밖이지만 어떤 면에선 그들이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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