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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08 14:34 수정 : 2006.12.08 14:36

5년째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조은정양.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 뛰어다닌 5년, 조은정(고3)양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한 청소년이 있다. 그는 바로 조은정(고3)양.

은정양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지난 2002년부터 방학이 되면, “일본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하라”고 외치고 있는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처음엔 수요시위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참가했지만, 이제 수요시위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2004년부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과 모금활동까지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그는 어떻게 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관심의 시작

은정양이 5년째 수요시위에 나오는 것에 비하면 시작은 어찌 보면 단순했다. 호기심.

은정양은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그가 즐겨봤던 것도 ‘만화로 보는 조선세종실록’이란 책이었다. 특히 3.1절이나 광복절 때마다 TV에서 나오는 역사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봤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겨울, 은정양은 TV에서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92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었던 수요시위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무언가 생각을 했으면 어렸을 때부터 바로 실천을 해야 적성이 풀렸던 은정양은 당연하게 일본대사관으로 향했고, 자연스레 시위 참가자가 되었다. 처음엔 구호를 외치는 것 등 시위의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시위참가 뿐만이 아니라 서명운동, 모금활동을 열성적으로 하는 운동가가 되어있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본의 사죄를 받고야말겠다’는 의지를 세우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동정’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 바로 세우기’

은정양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단순이 할머니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고 밝힌다. 은정양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친분이 두텁지 않다. 평소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또한 학교에 다니면서 ‘나눔의 집’ 등 할머니들이 거처하는 곳에 자주 들렀던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수요시위에 참가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 시위에 계속 나오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은정양은 진실을 바로 세우겠다는 ‘정의감’으로 표현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국가 찬탈, 식민지 국가에서의 국민들의 피해가 모두 담긴 문제라는 것.

따라서 은정양에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잘못된 우리 근현대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설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타깝게 돌아가시더라도, 끝까지 남아 진실을 밝히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시위참가만 하지 않는다. 일본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00만 서명운동도 진행한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알리고, 미래 세대들에게 인권·평화 교육을 하기 위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에도 뛰어들었다.일상적인 실천활동도 한다. 친구들에게 수요시위에 가자고 제안도 하고, 수업시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표도 한다.

▲끝을 보는 성격, 그리고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사실 은정양이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운동을 하면서 힘든 게 없었던 게 아니다. 중2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수요시위에 가자고 했지만 거절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던 것. 특히 고2 때 한 친구는 그에게 “너무 사회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이상한 애. 우리랑 다른 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역사의 ‘역’자만 꺼내도 알레르기를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친구들의 냉담한 반응에 상처도 받을 수 있지만, ‘모두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있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의 차이를 인정했다. 또한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주로 ‘입시’와 관련되어 있는 현실도 인정을 했다. 수능이 끝난 지금도 그의 친구들은 논술준비로 바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계속 제안을 했다. 결국 은정양은 지난 6일 738차 수요시위에서 5년만에 처음으로 그의 친구와 함께 참여했다.

은정양은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고집'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들었다.

무엇인가 한번 하면 끝장을 봐야했던 자신의 성격이 있었다. 이것은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은정양의 부모님은 그가 일본군 위안부 활동을 하는데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지켜보신다고 말했다. 일단 부모님이 말리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도 그에겐 큰 힘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말렸으면 그는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은정양은 “만약 부모님이 말리셨다면, 설득을 했을 것”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한다. 정의를 위한 활동을 끝까지 하겠다는 그만의 고집이다.

또 하나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은정양이 수요시위에 참가할 때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매번 바뀐다. 은정양은 “그만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라며 일본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은정양은 “할마니들이 돌아가시는 게 안타깝고 두렵다. 일본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한, 이 문제는 계속 남아있는 것”이라며 끝까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운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것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운동에 뛰어든 것이 어느덧 횟수로 5년째. 은정양은 운동을 하면서 많은 걸 겪었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 했다.

지난달 25일 노동자들의 집회에 가서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을 했다. 집회를 위해 앉아있는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다가가며 모금을 권유했고, 결국 140여만원을 모금 받았다.

아주 많이 모금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주머니를 털어가며 모금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돈이 없어 호주머니를 통통 털어 동전을 넣었던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은정양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들이 할머니들을 위해 모금 하는 것을 보니 감동적이었다”며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모금을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자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할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때마다 섭섭하다. 은정양은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할머니의 당연한 권리인데, 자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할 정부가 말로만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가 기억에 난다. 그때 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들과 같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사람들이 ‘개혁적인 대통령’이라고 말을 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하지만 현재 은정양은 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다.

좋지 않은 기억은 또 있다. 한 할아버지가 모금을 요청하는 은정양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문제인데, 남자인 자기가 왜 모금을 해야 하냐”고 말했던 것. 은정양은 바로 “할아버지는 손녀가 없나”고 말했지만, 여성문제로 국한시켰던 할아버지의 사고를 아직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은정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문제, 태평양전쟁 때 성 노예로 동원된 문제, 해방 이후 할머니들의 상처를 쉽게 꺼낼 수 없었던 한국의 유교문화, 해방 이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했던 정부의 태도’를 해결하는 것이라 다시한번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은정양이 바라는 게 있다. 학교 수업시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것. 그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일본군 위안부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국사시간엔 근현대사 부분이 마지막에 있어 거의 배우지 않는다. 선택과목인 '근현대사‘ 과목을 들어야만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 과목을 제공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

은정양은 지금 학교에서 더 많은 친구들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수업’을 바라고 있다.

정혜규 기자 66950@hanmail.net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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