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0 17:39
수정 : 2006.12.1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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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이렇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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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배우는 수학 /
요즘 서울시내 각 중·고등학교는 모든 과목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문제의 30~40%를 주관식 서술형이나 논술형 문제로 출제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수리영역을 뺀 모든 영역의 문제가 객관식 오지선다형이고, 수리영역은 6개의 주관식 단답형 문제가 출제됐을 뿐이다. 그래서 학교 시험도 당연히 이런 경향을 따라가게 돼 객관식 위주의 문항이 출제됐다. 그러나 객관식 시험은 학생들의 정확한 실력 측정이 어렵고, 교육 목적 달성 여부도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점차 주관식 서술형이나 논술형 문제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에서 보면 수학시험에서는 증명 문제가 가장 적당하다고 볼 수 있어서 출제 빈도가 점차 느는 추세다. 학생들은 시험 범위가 발표될 때마다 교사에게 “증명 문제가 출제되느냐?”고 묻곤 한다. 우리나라 중학생들은 수학에서의 증명을 무지 어려워하며, 실제로 수학교육학계에서는 10~30%의 학생들만이 기본적인 정리(定理)를 증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학생들이 요즘 대학 입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논술고사를 제대로 치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학의 기본적인 정리를 증명하려면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논술의 기본이 된다. 특히 수학이 싫어서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택한 학생들에게 논술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논리적으로 볼 때 인문·사회계열에서 논술을 잘하려면 중학교 수학시간에 증명을 제대로 배웠어야 한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수학의 명제들에 대한 증명을 잘하거나 좋아했던 학생들은 대개 고등학교에서 이공계열로 가는 것을 보면 대학의 논술시험은 왜 치러지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나는 요즘 방과 뒤 1주일에 2시간씩 우리 학교 인근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모아 기하탐구 수업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이 논리적인 증명을 하는 과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 수업 몇 달 동안의 관찰 결과를 정리해 교훈을 삼고자 한다.
학생들이 증명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단문으로 된 명제는 가정과 결론으로 나누기가 어렵다. 언뜻 보면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에 이들에게 명제를 주고 가정과 결론을 나눠서 쓰도록 했을 때 애로를 발견했다. 다음 두 명제를 보자.
(1) 두 삼각형이 합동이면 두 삼각형의 넓이는 같다.
(2) 합동인 두 삼각형의 넓이는 같다.
두 명제의 뜻은 같지만 (1)은 주어와 서술어가 각각 두 개인 복문이고, (2)는 주어와 서술어가 하나인 단문이다.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명제를 증명할 수 없다. (1)의 명제를 가정과 결론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가정 : 두 삼각형이 합동이다
결론 : 두 삼각형의 넓이는 같다
그런데 뜻이 똑같은 명제 (2)를 주고 가정과 결론으로 나누라고 하면, ‘가정 : 합동, 결론 : 두 삼각형의 넓이가 같다’라고 쓰던가, 아니면 ‘가정 : 합동인 두 삼각형, 결론 : 넓이가 같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예는 다음 두 명제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연습해 보기 바란다.
(1) 어떤 수가 2의 배수이면 그 수는 4의 배수이다.
(2) 2의 배수는 4의 배수이다.
그러므로 단문으로 된 명제는 복문으로 고쳐서 주어와 서술어를 각각 두 개씩으로 만든 다음 가정과 결론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둘째, 문장으로 된 명제와 기호화된 명제 사이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현재 교과서에서 도형을 배우는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명제가 문장으로 주어지며, 증명 과정에서는 그 명제를 그림과 수식을 이용해 기호화시켜 증명을 완성한 다음 다시 결론을 문장으로 정리한다. 학생들이 문장제를 어려워하는 경향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많이 발견된다. 중학교에서도 연립방정식 등의 응용 문제라고 해서 연립방정식을 학습한 뒤에 응용문제를 학습하게 되는데, 대부분 문장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 학생들은 주어진 조건에 맞는 식을 세우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그와 똑같은 현상이 도형 부분에서도 생긴다. 나는 수업을 관찰하면서 바로 이 부분의 학습에서 학생들이 애로를 느끼는 것을 자주 봐 왔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 문장으로 된 명제를 교과서가 설명하는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게 됐다.
예를 들어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의 크기는 같다’는 명제를 증명하려 할 때 학생들에게 닥치는 난관은 우선 이등변삼각형의 정의와 밑각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등변삼각형의 정의를 ‘두 각의 크기가 같은 삼각형’으로 알고 있는 학생에게는 이 명제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며, 밑각의 정의는 더더욱 어렵다. 밑각은 밑변의 양 끝각이며, 밑변은 꼭지각의 대변, 그리고 꼭지각은 이등변삼각형에서 길이가 같은 두 변이 이루는 각을 뜻한다. 복잡하기 그지없다. 역시 이 명제도 단문이기 때문에 가정과 결론을 나누기 어렵다. 그리고 삼각형을 그려서 꼭지점에 이름을 매기고 수식을 이용해서 기호화하는 과정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 교과서는 가볍게 이 사실을 처리하고 있다. 위의 명제를 그림과 기호를 이용하면 ‘△ABC에서 (그림 1을 넣을 것)이면 (그림 2를 넣을 것)이다’라고 고칠 수는 있지만, 이 과정은 그저 간단히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는 위의 문장으로 주어진 명제를 금방 수식을 이용해 기호화된 이 명제로 바꾸어 가정과 결론을 제시하고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의 경우 증명은 할 수 있으면서도 이등변삼각형의 성질을 문장으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이 점에 유의해서 증명을 공부해야 한다. 즉, 주어진 문장을 기호화하는 것에 대한 학습을 충분히 한 다음 증명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명 자체보다는 문장을 기호화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공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최수일/서울 용산고 교사, 사단법인 전국수학교사모임 회장
choi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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