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7 18:46
수정 : 2006.12.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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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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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우리 반 아이가 오늘 쓴 일기다.
오늘 5교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짜파게티 파티를 하는 날이다. 우리 조는 물 뺄 때 스프에 있던 고기가 떨어져서 “안돼!!!” 하며 몇 개만 지켜냈다. 소정이는 6그릇 먹었다. 먹고는 “아~ 맛있다!!” 했다. 창민이는 김치가 매워 “맵다! 맵다!” 했다. 오늘은 정말 최고다. 3학년 때가 제일 좋다. 왜냐하면 짜장면을 먹고 놀기도 했기 때문이다. 짜장면도 물론 관계되는 문제다. 진짜로 3학년 때가 최고다.
3학년에는 실과 교과가 없으므로 조리 실습이 없다. 그런데 무슨 뚱딴지 같은 짜파게티 타령일까? 그런데 다른 일기장을 넘겨 보면 더 엉뚱한 소리들이 적혀있다.
“우리 반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학교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은 우리 반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 온 통닭 쿠폰으로 닭을 시켜 먹었다.” “오늘 만화가 이희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답장과 선생님 싸인이 적힌 책들을 보내주셨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이 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 일기에도 빼곡히 적혀있다. 이상한 일기가 아니라, 모두 사실을 적은 일기다.
대학 때 나는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누가 나에게 왜 사진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대답하는 이 순간이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라고. 내가 애를 써서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하고 아이들 공책을 70권이 넘게 수확한 것도 바로 이 의도다. 우리 아이들의 10살 때 기억은 아주 반짝거리고 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리창에 새긴 입김처럼 사라져 버릴테니까, 그리고 나도 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이름만이 남아 스르륵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초등교사인 내가 나의 선생님들을 아련하게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주고 싶다. 평생 잊고 싶지 않은 신나는 추억들을 아이들의 추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1년이 다 지나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알뜰시장 수익금과 벌금으로 노래방도 가고, 교실에서 얼음을 갈아 팥빙수도 해먹고, 통닭 쿠폰을 모아 공짜로 통닭도 시켜 먹고, 텔레비전 광고의 한 장면처럼 짜파게티도 만들어 먹었다. 최근에는 만화가 이희재 선생님께 편지도 써서 소중한 답장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감정과 추억들을 서로 얼싸 안으면서 나눴다. 그리고 사실, 나도 아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교실에는 어른이 돼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의 멋진 학급 문화가 있을까? 대한민국 모든 초등학교 어디나 똑같은 학급 문화를 가진다면 교실에서 나올 아이들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아이들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교육 철학에 비춰보면, 우리 교실의 문화는 다른 어떤 학급 문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어울림이 아름다운 문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ozoazoayo@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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