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7 19:21
수정 : 2006.12.1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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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진/한국싸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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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클리닉 /
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기 위해 영주를 데려온 영주 어머니는 슬쩍 다른 고민 하나를 더 꺼낸다. 평상시는 비교적 꾸준히 공부를 하는 편인데 시험을 일주일쯤 남겨놓은 시점부터는 공부를 거의 안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희안한 습관이다. 시험 일주일 전이라면 평상시에 전혀 공부를 안하던 학생도 이젠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시기가 아닌가.
“영주야! 어머니께 들었는데 시험볼 때가 가까워지면 오히려 공부를 안하는 것 같아 걱정하시더라. 혹시 그 이유를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니?” 영주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만, 자꾸 나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세요!” 그렇다면 시험 때 공부를 안하는 건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반항일까? “그럼 엄마한테 화가 날 것 같은데…. 자꾸 비교당하는 것 같으면 말이야. 그래서 시험 때 공부를 안해버리는 거니?” “아뇨, 그래서 그런 건 아니구요…. 시험볼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해지니까요. 집중도 안되고. 다른 애들은 뭐하고 있나 싶고. 그런 생각하며 앉아 있느니 차라리 공부를 안하는게 더 낫겠다 싶어서요.”
영낙없는 시험불안 증상이었다. 영주의 시험불안은 영주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늘 남들 앞에 서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영주에게는 시험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뒤질 수 있다는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그런 불안은 점점 커져 시험 일주일 전쯤에는 도무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영주는 그런 불안을 내색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인 것처럼 여겨졌던 것일까? 시험에 대한 무관심인양 자신의 마음을 포장해 다른 사람이 제대로 그 마음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정말 영주가 시험에 무관심했더라면 어머니의 말씀은 적당한 자극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주는 이미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불안은 요리할 때의 소금과도 같다. 소금은 적당히 넣으면 요리의 맛을 살려주지만 너무 많이 넣으면 요리를 망치게 한다. 불안도 적절히 있다면 공부를 빨리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집중력도 높여주지만, 과도하게 넘치면 공부 능률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영주의 상태에 대해 알게 된 영주 어머니는 많이 놀라는 것 같았다. 너무 느긋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것 같아 조금 긴장을 높이려고 수시로 꺼냈던 친척 아이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을 것 같다. 대신 시험 때가 아닌 평상시에도 꾸준히 공부하는 모습을 영주가 보여주었을 때, 마음이 자칫 느슨해질까봐 쉽게 사용하지 못했던 ‘칭찬 카드’를 이젠 좀더 자주 사용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불안의 수위는 무조건 높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있을 때 가장 최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영주 어머니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신을진/한국싸이버대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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