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4 18:50
수정 : 2006.12.2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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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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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행복했어 /
조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또래에 견줘 키가 크지만 말랐다. 듣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라디오 장치를 써야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다. 친구들은 그를 놀리기 일쑤다. 엄마가 청각장애인인 록시와 생물 수업을 같이 듣는 케니가 그나마 가깝다. 집에서도 찬밥 신세다. 엄마는 그를 집 밖에 못나가게 하고 새아빠는 말도 건네지 않는다.
조이가 이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다. 있더라도 극히 제한적이다. 계속해서 따돌림과 차별을 받거나, 아니면 사회를 떠나거나. 문제는 그 어느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 특히 소외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런데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다. 어느 날 숲 속에서 우연히 찰리 할아버지와 수화하는 침팬지 수카리를 만나면서 조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같이 음식도 해먹고, 장난도 치고, 산책도 한다. 무엇보다 입밖으로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마음이 담긴 ‘손말’을 통해 대화를 하면서 조이의 삶의 태도는 결정적으로 바뀐다.
수화하는 침팬지와의 만남이란 설정이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사람들로부터 소외받아 힘들고 외로워하던 조이가 수카리를 만나서 변해가는 모습은 몇 번을 읽어 봐도 감동적이다.
물리적으로는 1(조이)에서 3(조이+할아버지+침팬지)으로 2밖에 늘지 않았지만, 조이는 그 ‘2’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발견한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같이 어깨를 맞대는 게 훨씬 더 기쁘고, 신나고, 즐겁다는 것. 또한 관계 속에서 아픔과 슬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행복이 들어선다는 것. 세상엔 살만한 희망이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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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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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저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 현실이긴 하지만, 조이와 수카리는 그럼에도 자기 자신 이외의 세계에 한 번쯤은 눈을 돌려볼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읽힌다. 혹시라도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진실을 찾아보라는. 곧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이웃들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을 냉대하며 고통을 줬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나의 작지만 애정어린 말 한 마디를 소외받는 이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어려운 이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이는 받는 자만 기쁜 게 아니다. 주는 이의 행복감 또한 최소한 자신이 가진 물질적 부나 위치보다는 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다움’과 ‘배려’가 아니겠는가.
조이와 수카리는 우리가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인간 중심적으로 대하는지도 깨닫게 한다. 얼마 전 타계한 일본의 세계적인 아동작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죽기 전까지 얘기했듯 “생명은 저마다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지니 로비 지음, 홍한별 옮김. 양철북/87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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