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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교사의 인문 사회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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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고찰할 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인간을 동물로 바라보는 연구야. 이처럼 인간을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로 ‘생물학적 인간학’이지. 뼈대 구조와 두개골, 생물 습성 등을 비교하여, 인간이 동물과 어떤 점에서는 같고 어떤 점에서는 다른가 하는 특징을 찾아내는 거야. 다윈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 진화론에서는 유사성의 관점에서 인간을 동물과 비교했어. 그 결과,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믿게 되었지. 이러한 진화론적 관찰은 인간과 유인원의 유사점을 보게 했고, 그 결과 인간과 동물을 구분할 본질 규정을 배제해 버렸어. 그래서 인간이 다른 동물에 견줘 보다 복잡한 신체 구조와 기능을 가졌다는 것 이상을 보여 주지 못했지. 모든 정신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거야. 20세기 들어 생물학의 새로운 연구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성이라고 하는 관점을 열어 놓았어. 대부분의 동물은 태어나서 1주일 안에 걷거나 달릴 수 있지만, 인간은 1년이 지나지 않으면 걸을 수조차 없어. 그런데 동물의 전문성이 동물을 언제나 동물의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만들었는데, 인간은 비전문성 때문에 오히려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거야. 인간은 비전문적 신체 구조 때문에 그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방도를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됐고, 이러다 보니 생각이 발달해 도구를 만들게 됐다는 거야. 하지만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견해만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고 할 수 없어. 거기에는 인간적인 특성을 이루는 풍부한 성질을 생물학적 유기체의 작용으로 ‘환원’해서, 인간을 전적으로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작용과 반응에 따라 해석하려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가치론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사실적인 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인간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가져와. 분명히 인간은 물질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인과론적인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방법만으로 인간을 전부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어. 그래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아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견해가 나타나게 됐어.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본질적 특성이라 하지.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Homo sapiens)이라고 규정하는 고전적 정의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이성적 인간학’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지. 이성이란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하는 능력이야. 다른 동물들이 오직 본능에 따라서 행동하는 데 견줘, 인간은 이성을 통해 거짓이 아닌 참을, 그름이 아닌 옳음을, 추함이 아닌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거야.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에는 이성에 대립되는 다른 힘들이 함께 있기는 해도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 가는 것은 이성이고, 이러한 이성은 자율적이며 가장 높고 강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어. 이성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하지만 인간은 항상 이성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지. 우리는 때로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마찬가지야. 죽음의 공장 아우슈비츠는 말할 것도 없고, 꿈의 공장 할리우드 또한 말초적 환각을 제공할 뿐이야. ‘이성에 의한 사회의 진보와 역사의 완성’이라는 근대의 단일한 가치 체계는 산산조각이 난 지 오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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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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