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14 20:26
수정 : 2007.01.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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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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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지난해 6월29일, 우리 반 복도에 있던 나팔꽃이 벌써 꽃을 피우고 씨앗까지 생산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팔꽃은 정상대로라면 9월이 넘어야 씨앗을 만들기 때문이다.
재작년 나팔꽃은 제때 덩굴도 올려주고 예뻐했지만, 지난해엔 아이들이 자꾸만 개구지게 새싹을 잡아뜯곤 해서 그대로 방치했다. 볼 때마다 새싹이 잡아 뜯겨있는 모습이 너무 속상해 물도 잘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팔꽃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서둘러 열매를 맺은 것이다. 옆반 나팔꽃이 아이들과 선생님의 사랑 속에 꽃이나 열매를 만들 생각조차 안하고 풍성한 가지를 뻗기에 정신 없을 때, 우리 반 나팔꽃은 덩굴도 제 때 감지 못하고 아주 이른 시간에 꽃을 피우고 씨앗까지 만들고 그만 죽어버렸다.
초여름, 이렇게 우리 반 나팔꽃 화분에는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진 가지와 일곱 개의 씨앗만 남았다. 나는 화분에서 골라낸 일곱 개의 씨앗을 보고 한참을 반성했다. 이 작은 나팔꽃 두 포기가 얼마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을까?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이 씨앗들을 얻었을까? 나는 살고자 하는 나팔꽃에게 제대로 된 환경 속에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없앤 것이다.
나팔꽃은 마치 우리 반 아이들 같다. 아이들은 꾸준히 차분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하면 시간이 지나 누구보다도 예쁘고 풍성하게 자랄 수 있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자꾸 급하게 보채다 보면 6월의 나팔꽃처럼 얼른 결실을 맺는데 급급해 제풀에 쓰러져 버린다. 그 사이에 아이들도 나팔꽃처럼 속병도 앓고 상처도 받겠지.
지난해 처음으로 우리반 아이들끼리 싸워 한 아이가 친구의 얼굴을 긁어놨다. 잔뜩 혼날 것이라 예상하고 겁을 먹은 아이들에게 잠시 화를 내다가 문득 느끼는 바가 있어 둘이 조용히 앉아 반성하라고 했다. 한 녀석은 울고 한 녀석은 미안하다고 했다. 울던 녀석은 우리 반 최고 말썽꾸러기인데, 정말 처음으로 아이의 입에서 변명이 아닌 진심어린 반성이 나왔다. “제가 먼저 잘못했어요.” 아이들에게 반성문 쓰라고 하고 싶었던 것도 잊은 채, 나는 “아주 진심으로 너희들이 반성했으니까 선생님이 혼내지 않을께. 중요한 것은 오늘 얼굴을 긁은 것이 아니라, 다음부터 절대로 그러지 않는 것이야”라고 했다.
두 아이가 서로에게 미안해 하며 손을 잡았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 윽박지르고 제 때 혼을 내는 것만이 올바른 교육이라 볼 수 없다. 때로는 매보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렇게 나는 우리 반 나팔꽃을 보면서 기다림과 사랑의 깨달음을 얻었다.
아 참, 그 나팔꽃 씨앗 일곱 개는 다시 화분에 심어 나의 정성 속에 가을에 백 개가 넘는 씨앗을 만들어 냈다. 내년에는 다시 예쁘게 꽃피울 수 있겠지? 어쨌든 일곱 개라도 늦지 않은 것 같다.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ozoazoayo@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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