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나쁜 것인가?
|
교과서에서 논제찾기
박용성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교과서 훑어보기 성선설은 사람이 생득적으로 순선(純善)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에 정욕(情慾)이나 환경에 의하여 악행을 자행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반대로 성악설에 의하면, 인간은 그 본성이나 감성적 욕구가 악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충동이나 공격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성무선악설에서는 선악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선택과 판단이나 환경에 달려 있다고 본다. ―윤리와 사상(교육인적자원부) 15쪽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적 유대와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키므로 이기심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심은 경제 활동의 강력한 동기이므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이기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이기심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기심에 의해 추진되는 자유 경쟁은 자칫 인간 사회를 약육 강식의 정글로 만들 수 있으므로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민윤리(교육인적자원부), 146쪽 ■ 논제 찾아 생각하기 인간이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가 아닌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가 아직도 논의되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아. 인간을 사회적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오로지 이기적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그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의 모습이 서로 다르게 그려지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인간 사회의 기원에 대한 설명, 현재의 사회가 지닌 문제점, 그리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처방이 달라져. 그렇지만 어쨌든 간에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아. 왜냐 하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모습이 이를 잘 증명해 주기 때문이지.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학에 가기 위해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의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야. 곧 좋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직장을 잡는 데나 결혼하는 데나 여러 가지로 유리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지. 물론 개중에는 학문 자체가 좋아서,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좋은 대학에 가려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이런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해.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은 물리치기 어려워.그런데 이같이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서 구성된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관점이 있어. 첫째는 인간의 이기심을 나쁘게만 보는 관점이야. 이에 따르면,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심은 통제되어야 해.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에 해가 되기 때문이야. 따라서 사회에는 인간의 이기심을 막을 여러 가지 강제 장치(법과 제도, 이를 집행할 군대와 경찰·감옥 등)가 필요해. 둘째는 인간의 이기심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 관점이야. 이에 따르면,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심에도 의존해야 해. 따라서 이기심을 억제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인간의 이기심을 나쁘게만 보는 관점부터 살펴볼까.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에 해악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각종 제도나 법률 등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활동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거야. ‘강제력을 통한 해결’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지. 이에 따르면, 인간의 이기심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어. 인간의 경제 활동을 예로 들어 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많은 돈을 벌기 원하지.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그 결과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사회적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공장의 공해 물질 배출, 건설 회사의 부실 공사, 재벌의 땅 투기 등은 모두 이런 예에 속해. 결국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적 이익과 충돌하게 되고, 그 결과 온갖 사회 문제가 발생하지. 이러한 문제점은 강제력을 통한 해결이 필수적이야. 하지만 이 주장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야. 돌이켜보면, 인간의 이기심은 개인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 왔고, 이것은 다시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어 왔기 때문이야. 예를 들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과 자본가에 의해 시작되었어. 그들은 오직 자신의 돈벌이에 몰두하여 기술을 발전시키고 경쟁 기법을 향상시켰지. 그 결과 개별 기업가나 상인은 많은 돈을 벌었고, 동시에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어.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려고만 해서는 안 돼. 대신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이 공정하게 잘 발휘될 수 있는 사회 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 이러한 관점과 방법은 사회의 자율성을 증대시킨다는 점에서도 중요해. 예를 들어, 기업에게 경제 문제를 일임하고 경쟁을 붙일 때 기업의 자율성은 증대되지. 동시에 자율성 속에서 기업의 책임성과 윤리성은 커져. 그리고 기업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져야만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생기게 되고, 다시 이것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이기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어. 이처럼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야.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통제하려고만 할 필요는 없어. 대신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해. 다시 말해 건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자연스럽게 공익과 조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으로 잘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지. 이타심을 강조하는 도덕 교육도 이와 같은 적절한 사회 제도의 정착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현실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야. 박용성/<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 기출 문제로 논제 잡기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2006학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시 논술) 제시문 (1) 1-1. 동물이 인간이나 동물로부터 어떤 물건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 또는 그 동물의 호의를 얻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설득 방법이 없다. 강아지는 어미에게 꼬리를 치며 아양떨고, 애완용 개는 먹을 것을 원할 때 온갖 아양을 떨어 식사중인 주인의 주의를 끌려고 한다. 사람들도 자기의 동료에게 이와 같은 수법을 때때로 사용한다. 남들로 하여금 자기의 기분에 맞게 행동하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을 때, 사람은 남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온갖 아첨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이렇게 할 만큼의 시간 여유를 가지지 않는다. 문명 사회에서 그는 항상 무수한 사람들의 협력과 원조가 필요하지만 그는 평생에 몇 사람의 친구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거의 모든 다른 동물류에서 각각의 동물은 성숙하면 완전히 독립하며, 자연 상태에서는 다른 동물의 원조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동료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것을 오직 동료의 자비에만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동료의 이기심을 자극하고 자기의 요망 사항을 들어 주는 것이 그들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낫다. 타인에게 어떤 종류의 거래를 제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면,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러한 모든 제의가 의미하는 바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호의의 대부분을 상호간에 얻어낸다. 우리가 식사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國富論)> 1-2. 물론 스미스는 인간이 오직 이기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는 하지 않았다. 스미스는 다만 이기적 본능이 친절성, 박애심, 희생 정신 같은 것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인간 심성의 고귀한 측면에만 사회를 맡기고 미래를 의지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능 중 가장 강한 본능인 이기심을 어떻게 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잘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는 마치 신호등이 고장나 버린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처럼 혼란스럽게 되어 버리지 않을까? 각자의 이해 관계가 부딪칠 때 우리는 자동차들의 연쇄 충돌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교통 정리하는 경찰관 없이는 도로가 안전할 수 없듯이 중앙에서 경제 활동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사람 없이 사회가 존속해 나갈 수 있을까? 그렇다. 그냥 생존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어떤 중앙 경제 기획 체제를 가진 사회보다 훨씬 더 번영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사회야말로 투철한 박애심에 기초한 사회보다 생산량은 물론이요 사회적 화합이나 단결과 같은 측면에서도 앞선다는 사실이다.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제시문 (2) 살펴보건대 혼란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신하와 자식이 그의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것이 이른바 혼란이다. 자식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아버지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아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형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형을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신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임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금을 해치고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 이것이 이른바 혼란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고 임금이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다면 이것 역시 천하의 혼란이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자식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식을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형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아우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우를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임금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신하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하를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천하의 도적들도 역시 그러하다. 도적은 자신의 집은 사랑하면서도 다른 집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집의 것을 훔쳐 자신의 집을 이롭게 한다. 도적은 또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남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을 해치고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대부(大夫)들이 서로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고 제후들이 서로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데서도 역시 그러하다. 대부들은 각기 그의 집안은 사랑하면서도 다른 집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집안을 어지럽혀 자신의 집안을 이롭게 한다. 제후들은 각기 자신의 나라는 사랑하면서도 다른 나라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그의 나라를 이롭게 한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들은 모두 여기에 원인이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묵자, <겸애(兼愛)> 문제 1. 제시문 (1)과 제시문 (2)에 나타난 각각의 핵심적 주장은 무엇이며, 또 가장 중요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300자 내외로 기술하시오. 문제 2. 제시문 (2)의 관점에서 제시문 (1)의 입장을 논하고, 제시문 (2)의 문제점도 포함하여 5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문제 3. 제시문 (2)의 입장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400자 내외로 논하시오. <유의 사항>
1. 시험 시간은 120분임
2. 문제별로 배점이 다름
3. 답안 분량을 지킬 것(띄어쓰기 포함)
4. 각 문제 답안에 문제 번호를 쓰고 시작할 것
5. 자신을 드러내는 표시를 하지 말 것
6. 제목을 쓰지 말 것
7. 답안 작성은 흑색 또는 청색 펜만을 사용할 것 위 논제와 관련이 있는 기출문제(2006학년도 한국외대 정시 논술)는 인터넷 한겨레(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