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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1 17:06 수정 : 2007.01.21 17:15

오늘날 우리의 글쓰기는 ‘나’를 향한다. 소설도 비평도 그렇고, 논술문도 ‘나의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 ‘나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데, 일기 쓰기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사진은 나치 점령 아래 긴장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 <한겨레> 자료사진

삶 사유 논술 /

새해가 시작되는 1월. 시간의 단면을 잘라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방학 중인 초등학생들은 일기를, 중·고등학생들은 독후감과 논술문을 쓰느라 한창이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다이어리를 사 1년을 계획하고 새로운 희망을 차곡차곡 적는다. 누구는 일상생활을, 누구는 지식을, 누구는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분투한다. 저마다 다르지만 그 중심에는 ‘자기 쓰기’가 있다.

우리는 흔히 한 개인의 일생을 쓰는 것은 어떤 도시나 한 나라의 역사를 쓰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보다 약 500년을 앞섰다. 중국의 <사기>는 인간의 역사를 우주의 섭리로 이해하도록 했으며, 조선왕조도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 등을 통해 국가의 통치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의 기록이 사적인 기록보다 더 자연스럽게 강조됐다.

개인에 관한 기록들은 대부분 일대기 중심이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군인이나 정치가들의 행위를 이야기식으로 서술했다. 동양의 인물전도 출생, 성격, 행동, 업적 등을 차례대로 이어나갔다. ‘누구의 일생’을 훑어가는 목적도 거의 유사했다. 그 인물을 귀감삼아 공공생활에서 미덕을 장려하고 악덕을 줄이려는 ‘윤리성 함양’에 초점이 맞춰진 까닭이다.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 글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큰 섭리에 따르겠다는 자기 맹세에 가까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신에 대한 찬양과 죄인된 마음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우주와 이성에 섭리에 따르는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관심은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나’를 향한다. 소설 속의 시선은 이제 더 이상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다. 비평의 출발점도 ‘나는 이렇게 보았다’가 기본축이다. 논술문 안에도 ‘나의 생각’이 드러나야 하고, 관찰이나 여행 기록도 ‘나의 감성’ 없이는 밍밍하다. ‘나에 관한’ 글쓰기 중 가장 독보적인 형태인 일기쓰기도 맹렬히 분화되고 있다. 마음일기, 칭찬일기, 여행일기, 독서일기, 시간일기, 취미일기 등 세기도 바쁘다. 바야흐로 ‘나의 폭발’이다.

도대체 현대인들이 이토록 몰두하고 있는 ‘나를 쓰는 일’은 언제부터였을까. 다니엘 부어스틴의 <창조자들>에 따르면 그 결정적 순간은 몽테뉴의 <에세>에서 비롯된다. “나 자신이 내 책의 내용이다.” 몽테뉴의 선언은 자기 표현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바로, 마음가는 대로 붓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 문학이다. “나는 존재의 본질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하루하루 시시각각 지나가는 것을 그린다. 이것은 우유부단한 생각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앞뒤가 맞지 않게 되곤 하는 생각들의 기록이다.” 몽테뉴의 글쓰기는 마음속에서 산만하게 진행되는 생각들을 풀어내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출발점이 됐다. 전통적인 규칙과 형식의 옷을 벗은 글쓰기는 ‘솔직한 자아를 축하’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나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 나에 대한 고민은 평생 계속되지만 자아는 정말 바람처럼 쉽게 잡히지 않는다. 자신에 관한 진실을 쓰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도 등장했다. 하나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이다. 이 책은 루소가 자신을 음해한다고 여겼던 가상의 세력에게 스스로 시달리면서 쓴 자기 변론이다.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고 도덕적인 청년도 아니었던 루소는 자신의 일생을 변명했다. 모범적 삶을 살지 못했지만, 자신의 위대함과 훌륭함을 옹호하면서 세속적 고해성사의 매개체로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반면, 우리에게 ‘프랭클린 플래너’로 더 익숙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사회적 성공담을 책으로 엮어낸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22세에 직접 작성한 자기 비문에 “인쇄업자 프랭클린…… 그의 업적은 잊혀지지 않으리니”라 예언했고, 실제로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겉모습과 이미지를 자랑하고, 자기 생활의 규칙들을 세세하게 드러내며 강조했다. 그가 개척한 성공담 문학은 자기 홍보를 중시하는 대중문화와 맞물려 활성화됐다.

내가 나를 긍정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순간마다 바뀐다. 또한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보는 마음도 늘 단선적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쓸 때 그 중 한 자리에 머물러 스스로를 드러낸다. 초등학생의 일기, 문필가의 수필, 대학 교수의 논문,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다. 자기 마음에 고인 생각은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며, 나는 나를 바라보는 최초의 사람이자 보여지는 거울이다. 혹시 매일 쓰는 일기에 제 3자의 시선이, 대학으로 가는 논술문에 설익은 과시가 숨어있지는 않은가. 억지로 쓰는 글이라 하더라도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의외의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 부디 친절하게 대화하며 나를 붙잡고 밤을 새는 그런 날 하루쯤 지내보면 어떻겠는가.

하루 하나씩 친구들과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자신의 미니 홈피를 되돌아보고 공개일기와 비공개일기를 나눈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2. 흔히들 논술문을 쓸 때는 “되도록 ‘나’를 드러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
3. 다이어트를 위한 식사일기를 써보고 자신의 몸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해 보자.
4. 주제에 맞춰 생활을 읽는 수학일기나 과학일기 등을 써본 적이 있는가? 자유롭게 일기를 쓸 때와 어떤 점이 같고 달랐는지 마음을 되돌아보자.
5. <열하일기>나 <난중일기> 등 유명한 기록으로 남은 일기에서 인상깊은 장면을 골라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6. 한창 활동 중인 유명인(운동선수, 정치인, 경제인)의 자서전 중 하나를 골라 읽고, 사망한 사람의 것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자.
7. 최근 벌어졌던 저서 대필사건들 중 하나를 떠올려 보고, 독자가 책에서 공감했던 대상이 무엇이었을지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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